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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취재기] 폭설 고립된 취재차량, 삽질의 추억

등록 2008-01-24 15:58수정 2008-01-24 18:46

휘청거리도록 눈이 가득 쌓인 나뭇가지 사이로 23일 강원 삼척 도계읍의 한 주민이 눈을 쓸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휘청거리도록 눈이 가득 쌓인 나뭇가지 사이로 23일 강원 삼척 도계읍의 한 주민이 눈을 쓸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강원 폭설 취재 위해 떠난 취재차량 폭설에 고립

한달 전부터 달력에 표시해두었던 그 날, 1월22일이다. 적당한 날씨와 때를 가늠하며 벼르던 취재를 위해 출장을 나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사륜구동 취재차량을 타고 회사를 떠났지만, 기상청은 일찌감치 강원 태백지역 등에 이날 하루에만 48센티미터가 넘는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고속도로를 향해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는 벌써 2센티미터 이상 내린 눈으로 번잡스러운 서울 도심 출근길이 비치고 있었다.

어느덧 강원 원주를 지나 들어선 제천, 높다란 산자락은 벌써 하얀 눈이 뒤덮고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오랜만에 만나는 눈풍경다운 풍경에 목적했던 취재를 원없이 해보겠구나 생각했다. 기대로 가득 부풀었지만, 제천을 지나 태백으로 가는 길목의 정선군 고한·사북 지역에 들어서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날 내린 눈과 얼음이 뒤섞여 도로는 이미 빙판이 되어 있었다. 지칠 줄 모른 채 점점 굵어지는 눈송이는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22일 강원 삼척시내에서 어린이들이 놓다랗게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2일 강원 삼척시내에서 어린이들이 놓다랗게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태백시에 들어서자 눈은 이미 어른 허리만큼 쌓여 있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였다. 편집장은 ‘전국적 폭설로 교통상황이 안좋아, 마감 시간을 1시간 당겼으니 그에 맞춰 사진기사를 전송해달라’고 주문했다. 날씨가 궂은 날엔 현장에 나와 있는 기자뿐 아니라 제작·배송도 전쟁터로 변한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독자의 손에 이른 아침까지 신문을 전달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도로 사정에 좌우될 수밖에 없고, 날씨는 이 도로 사정을 쥐락펴락하는 주요변수다.

마음은 바쁘고, 길은 얼어붙었으며, 사방은 눈에 덮여 있다. 태백시는 제설차량과 일반 차량이 뒤엉켜 눈이 내리는지 홍수가 져서 물이 넘치는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혼잡스러웠다. 눈구름에 일찌감치 어두워진 태백시에서 급한 대로 시민들이 집앞에서 눈 치우는 모습을 스케치해 곧장 태백시청 프레스룸을 찾아 인터넷에 연결했다. 다행히 1판에 맞춰 마감할 수 있었으나 기자실에는 마감이 따로 없었다. 기사를 넘긴 뒤에도 프레스룸에 모인 기자들은 기상청에 폭설로 인한 곳곳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삼척 도계읍 황조리, 얼음판 위 진퇴양난…체인마저 끊기고

지붕 가득 눈 덮인 강원 삼척 도계읍.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지붕 가득 눈 덮인 강원 삼척 도계읍.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폭설로 인해 고립이 예상되는 마을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팀은 삼척시 도계읍 황조리를 찾아나섰다.

황조리로 가기 위해 도계읍을 벗어나 마을길로 들어서자 도로는 어른 허리만큼 눈이 쌓여 사륜구동 차량이라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걸어 가는 것도 불가한 상황, 바퀴에 체인을 감은 뒤 황조리 마을로 들어섰다. 무리이긴 했으나 취재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들어선 지 2km지점에서 더이상 전진할 수도 뒤로 돌아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빙판 위로 쌓인 눈 그 위의 취재차가 헛바퀴를 돌며 눈밭에 묻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방이 온통 하얀색 눈더미로 쌓인 곳에서 붕붕 도는 헛바퀴의 진동은 산전수전 두루 겪은 사진기자에게도 명확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고립’ 상태에 빠진 것이다.

백병산 아래 심포마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백병산 아래 심포마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차를 뒤져 찾아낸 깔판을 바퀴 아래 밀어넣고 차를 당겨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삽이 없어서 손으로 눈을 퍼내기 시작했지만 계속 내리는 눈 앞에 새발의피. 이래저래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동안 체인도 끊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금세 해가 지고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밤을 지샐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자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마을까지 걸어가 직접 구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온 길을 따라 30여 분 걸음을 옮겼다. 후끈 땀이 오를 무렵 마을이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삽자루 하나와 곡괭이, 플라스틱 눈삽 등을 챙겨오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차량 주변에 쌓인 눈을 삽으로 두 시간 가까이 퍼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산쪽 방향에서 마을 방향으로 차량을 돌리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아이스링크가 되어 바퀴만 헛돌 뿐 빙판길은 쉽사리 차량을 놓아주지 않았다.

‘삽질도 함께 하면 힘이 된다’

도움주신 강원대학교 도계(삼척제2)캠퍼스 현장 관계자들. 왼쪽부터 고광우, 조현철, 김정태, 최숙현 김동하 씨. bong9@hani.co.kr
도움주신 강원대학교 도계(삼척제2)캠퍼스 현장 관계자들. 왼쪽부터 고광우, 조현철, 김정태, 최숙현 김동하 씨. bong9@hani.co.kr

삽질도 하고 밀어도 보고.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삽질도 하고 밀어도 보고.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오른쪽 때마침 폭설로 중단된 공사를 둘러보려 현장을 찾아가던 강원대학교 도계(삼척제2)캠퍼스 현장 김정태 공무과장(동양건설산업 소속)을 비롯한 공사 관계자들이 우리를 발견했다. 고군분투 끝에 만난 도움의 손길이라니, 얼마나 상투적인가. 그러나 이 뻔한 상황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는 그런 어려움에 처해본 이들이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눈을 퍼내고 차를 밀어서야 취재차량은 본드로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 않던 그 지점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감사의 뜻을 전하고 모두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무심한 듯 눈송이는 쏟아지고 있었다.

왼쪽일반적인 경우라면 위험이 예고되는 상황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기자는 조금 다르다. 고립 자체도 취재이고 상황일 수 있는 것이다. 무모하게 부나방처럼 뛰어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의무인 탓에 위험을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그러다보면 이따금씩 예상되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는데 물론 이 상황을 슬기롭게 벗어나기 위해 침착함과 사전준비성은 필수.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과의 관계는 현장상황을 참 다양하게 바꿔간다. 이번 취재처럼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점 뿐만 아니라 사진취재를 흔쾌히 허락해주거나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등 곳곳에서 만나 소통하는 분들 여러 형태로 취재를 가능하게, 또 풍성하게 만들어주신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폭설주의보가 해제된 뒤 맑게 갠 다음날 오른 백병산.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폭설주의보가 해제된 뒤 맑게 갠 다음날 오른 백병산.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폭설주의보가 해제된 뒤 맑게 갠 다음날 오른 백병산은 순백의 웅장함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들은 차량을 빼낼 수 있게 힘을 더해주신 강원대학교 도계(삼척제2)캠퍼스 현장의 고광우, 조현철, 김정태, 최숙현 김동하 씨를 비롯해 도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작은 선물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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