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연 포함도 위법”
정몽구(70)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사회 공헌기금 출연과 강연 등의 사회봉사 명령을 조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새 항소심 재판부는 정 회장의 형량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실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대법원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1일 회삿돈 9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함께 8천억원대의 사회 공헌기금 출연 및 강연·기고 등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검찰은 ‘사회봉사 명령에는 재산의 사회 헌납 등이 포함될 수 없다’며 상고했다.
재판부는 “현행 형법에서 사회봉사는 500시간 내에서 시간 단위로 부과될 수 있는 일 또는 근로활동을 의미한다”며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에 비출 때 사회봉사 명령의 요건과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함부로 확장·유추 해석해 운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회봉사 명령에서 금전 출연을 명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고 △자신의 범죄행위와 관련해 말이나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도록 하는 것은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 등을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많아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회봉사 명령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집행유예” 부분도 함께 파기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정 회장에게 어떤 형을 선고할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
정 회장은 비자금 1034억원을 조성해 696억원을 빼돌리는 등 회삿돈 900억여원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1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2006년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2013년까지 8400억원을 출연한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 △준법경영을 주제로 전경련 회원 등에게 2시간 이상 강연할 것 △국내 일간지 등에 같은 주제로 기고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대법원은 김동진(58)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정대근(64) 전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뇌물을 건넨 부분에 대한 항소심 판단도 파기환송했다. 항소심은 “농협은 정부기관이 아니므로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뇌물죄를 농협 회장에게 적용할 수 없다”며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농협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정부 관리 기업체라며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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