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중앙협의회 자원봉사자들이 7일 낮 인천 사할린 동포 복지회관을 찾아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고 있다. 대한적십자봉사회 제공
“두고온 자식ㆍ손자 눈에 밟혀…”
“꽃을 달 필요가 뭐 있어요. 큰딸은 마당 한가득 꽃을 심어놨었어요.”
한국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대 박도니노(75)씨는 딸과 함께 보냈던 어버이날을 ‘마당 한가득 심은 꽃’으로 기억했다. 박씨의 딸이 지난해 6월 병으로 숨지자 사위가 박씨의 영주귀국을 신청했고, 지난해 12월1일 박씨는 한국 땅을 밟았다. “사위가 아직 젊은데 내가 거기 있으면 짐이 되잖아요. 죽기 전에 고국 땅을 밟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
박씨의 어머니는 1938년 남편이 숨지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다섯 살된 박씨를 업고 군산을 떠나 사할린으로 갔다.
1986년에 철 가공 일을 하던 박씨의 남편은 넘어진 철기둥에 등이 깔렸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23년 동안 병원에서 밥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자녀들이 50살을 훌쩍 넘었고, 손자가 남편이 하던 철 가공일을 할 정도로 자랐다. 박씨는 지난 세월을 훌훌 털고 고국으로 왔지만 러시아에 두고 온 자녀 넷과 손자 11명이 자꾸 눈에 밟힌다. “여기 오니까 그렇게 편하고 행복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왜 이리 마음 저 한쪽이 ….”
박씨처럼 지난해 영주귀국한 600여명의 동포들은 8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어버이날을 맞는다.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중앙협의회는 7일 인천 사할린동포 복지회관을 찾아 이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 사는 인천 논현동 아파트 노인정에서도 잔치가 열렸다. 김동태(74)씨는 “사할린에 있을 땐 5월3일엔가 어버이날 행사를 했던 것 같은데, 여기서도 잔치를 할 수 있어 기쁘다”며 “아들 손자들이 잘 살고 있는지 저녁에 전화 한 통 넣어봐야겠다”고 말했다.
박도니노씨는 “다음달 11일이 딸 제삿날인데 사할린에 꼭 다녀오고 싶다”며 “마음이 행복하고, 반갑고, 아프고 한 게 우리들 심정”이라고 말했다.
1990년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이 시작된 뒤 현재까지 2295명의 사할린 동포가 한국 땅을 밟았으며, 지난해 특별히 ‘확대사업’이 실시돼 611명이 대거 입국했다. 대한적십자사와 외교부 등 관계 부처는 오는 9월께 650명을 추가로 영주귀국시킬 계획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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