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추가 협의 결과를 발표한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과학적 근거 ‘입증책임’ 계속 한국쪽에
한-미 통상마찰 소지 없앤 것도 아냐
정부 ‘쇠고기 고시’ 23일·26일께 강행
한-미 통상마찰 소지 없앤 것도 아냐
정부 ‘쇠고기 고시’ 23일·26일께 강행
쇠고기 추가협의 결과 발표
정부가 20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협상 ‘추가협의’ 결과는 ‘외교적’ 성격이 강하다. 국제적으로 이미 인정된 수입국의 주권적 권리를 추상적으로 기록한 문서를 양국 대표가 서명해 교환했을 뿐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즉각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한 것도 아니고,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할 경우 발생할 통상 마찰의 소지를 없앤 것도 아니다.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2005년 입안예고보다 후퇴시켰는데도, 30개월 이상 쇠고기까지 수입을 허용한 ‘치명적 결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고 공언했다. 재협상 없이 ‘추가 협의’를 통해 ‘졸속 협상’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무마하는 데만 급급한 인상이다.
■ 광우병 발생해도 즉각 수입 중단 안해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추가 협의를 통해 서로 서명이 담긴 서한을 교환했다. 한국 정부의 검역주권을 무력화한 수입 위생조건 5조와,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의 범위를 미국 국내 기준보다 완화한 1조9항에 대해 양국의 입장을 일치시켜 좀더 명확히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김 본부장은 “양국의 장관급 인사가 서명을 담아 간결한 문장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첨부를 붙인 것은 상당한 효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워브 대표의 서한문을 보면, 정부 주장과 달리 검역주권을 확실히 확보했는지 의심스럽다. 슈워브 대표는 서한문에 “모든 정부는 가트 20조와 세계무역기구 위생 및 검역 협정에 따라 건강·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원론적 수준의 표현만 썼다.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수입 중단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슈워브 대표는 지난 12일 한승수 총리의 담화에 대한 화답 성격의 성명에서 밝힌 대로 ‘과학에 근거할 것이라는 인지 아래 가트와 세계무역기구의 위생 및 검역 협정의 주권적 권리는 보호를 받는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이는 광우병이 발생해도 확산 위험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한국 정부가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수입 금지 조처를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 본부장도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 중단을 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이 철저한 조사를 하고, 우리 쪽도 조사단을 보내는데 그런 조처를 통해 상당 부분 우려는 해소가 가능하다. 그래도 우려가 해소 안 되면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도 “과학적인 근거를 입증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수입 중단 조처에 대해 미국과 협의가 안 되면 통상 분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 재협상 없이 고시 강행 움직임
정부는 한-미 추가 협의에서 수입 위생조건 5조와 1조9항 이외에 다른 독소조항들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30개월 월령 제한 철폐 등 나머지 독소조항들의 개정 가능성에 대해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위험통제국 지위를 받은 나라는 연령과 부위의 제한 없이 수출할 수 있는 게 국제적 기준”이라고 말했다. 국제기준이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장 뤼크 앙고 국제수역사무국 사무차장은 지난 16일 파리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한 인터뷰에서 “국제수역사무국은 국제간 교역에 관여하지는 않으며, 쇠고기의 수출입은 당사국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본부장은 “고통스러운 추가협의 과정을 통해 최선을 다했다”며 “새로운 과학적 발견 등으로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재협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결국 국민의 80%가 원하는 재협상은 외면한 채, 실효성도 분명하지 않은 외교 문서를 명분으로 ‘졸속 협상’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비껴가겠다는 얘기다.
한편, 지난 15일 수입 위생조건의 장관 고시를 연기한 농림수산식품부는 추가 협의 내용을 반영해 오는 23일이나 26일쯤 새 수입 위생조건을 확정·고시할 방침이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20일 오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며 정부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추가 협의 결과의 미흡함을 비판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