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기자
현장에서
사흘에 걸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지고 100여명의 시민들이 연행됐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가 민심에 불을 붙였고 경찰의 강제연행이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지만, 정작 검·경 등 관계기관들은 이번 거리행진의 핵심을 잘못 짚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검 공안부장이 주재하는 공안대책협의회가 27일 긴급 소집됐다. 이날 공안대책협의회에서도 어김없이 “배후자 강경 처벌” 방침이 나왔다. 앞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불법 폭력 집회를 선동, 배후 조종한 사람을 엄정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도로 점거 시위가) 치밀하게 계획된 것 같다”며 배후설을 들고 나왔다.
배후설의 근거는 초라하고, 드러난 실체 역시 가볍기 그지없다. 배후설은 회사원, 주부, 여고생, 자영업자, 대학생 등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았지만 촛불을 들어 올린 일반 시민들이 지난 5공 시절처럼 닭장차에 실려가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터넷 괴담’의 배후를 찾겠다며 호들갑을 떨던 검·경이 20일 만에 내놓은 첫 수사결과도 마찬가지다. “고교 생활에 불만을 품은 재수생이 ‘휴교령’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퍼뜨렸다”는 발표에 맞닥뜨리면 무리한 코드 맞추기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배후설 자체가 괴담에 가깝다.
지난 26일 촛불집회 현장에 처음으로 가봤다. 예전 집회에서 보았던 일사불란함은 없었다. 연사로 나선 사람들의 구성도, 사용하는 언어도, 주장하는 내용도 저마다 달랐다. 검·경 수뇌부의 판단과 달리, 실무진들은 ‘주동자 없는 새로운 집회문화’에 당혹해하고 있다고 한다. 검·경과 보수언론의 섣부른 배후설은 국민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촛불에 비친 배후의 그림자,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는 배후의 실체는 ‘국민의 소리에 귀 막은’ 청와대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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