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경산시 진량읍에서 한우 60마리를 키우는 채희락씨가 소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대학생 자녀가 두 명인 채씨는 “학비는 커녕 사료값 대기도 버겁다”며 한숨지었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당 5천원대’ 주저앉아 송아지값 받고 넘겨
“내용없는 대책만 줄줄…촛불집회 가봐야지”
“내용없는 대책만 줄줄…촛불집회 가봐야지”
“경제 살린다고 해 대통령 뽑아 놨더니, 왜 우리 축산농가를 볼모로 삼으려 합니까. 이대로 가면 모두 파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30일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우를 키우고 있는 경북지역 농민들은 저마다 전날 발표된 ‘쇠고기 고시’와 관련해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경북 경산시 남산면 자신의 한우 농장에서 소먹이를 주고 있던 전업농 서후열(64)씨는 “정부가 국민들 상대로 쇼하는 것 같아 속에 천불이 나 (고시 발표를) 보다 나와 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우 150마리를 키우는 서씨는 “올 들어 넉달 동안 사료값 등 비용이 천만원이나 늘었는데 지금 큰소 값이 협상 전보다 100만원 이상이 내려 송아지값이 되고 농민들은 입에 거미줄을 칠 판”이라며 “축산농가는 지금 날벼락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고, 이대로라면 축산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진량면에서 소 60여 마리를 키우는 채희락(46)씨는 더 절박하다. 그는 2004년 회사를 그만두고 전 재산을 털고 빚까지 얻어 한우 사육을 시작했다. 빚만 눈덩이처럼 늘어 2억원이라는 그는 “소가 아플 때 소 옆에서 밤을 새면서도 적정 사육 규모만 유지하면 곧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자식 같은 소 먹이를 구할 돈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우울증으로 눈에 경련까지 왔다는 채씨는 “고시 이후 유지가 힘든 축산농들이 서로 소를 내다팔 것이 가장 걱정”이라며 “홍수 출하는 가격폭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모든 농가가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비비케이 동영상 폭로가 나왔을 때 제발 이명박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이라며 “그런 이 대통령이 힘없는 우리 목을 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나라당 지지자였다는 이상언(54·경산시 유곡동·한우 120마리 사육)씨는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재협상 없이 그냥 미국 쇠고기를 들여오면 한우까지 같이 죽는다”며 “오늘은 경산지역 촛불집회에, 이번 토요일엔 서울 청계광장 촛불집회까지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충남 축산의 중심지인 홍성지역 농민들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앞으로 어찌 되는 거냐?”며 일손을 놓았다. 한우협회 홍성지부 등에는 하루 종일 대책을 문의하는 축산농민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한 축산농민은 “그동안 얌전히 정부 대책만 기다리다 이 꼴을 당했다”며 “앉아서 죽느니 강력한 대정부 투쟁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전날 열린 광천 우시장에서는 송아지 거래가 끊긴 가운데 500㎏짜리 수소 1마리 거래가가 300만원대(㎏에 6천원선)에서 형성됐다. 지난달에 견줘 50만원이나 떨어진 가격이다. 일부 부실한 소는 ㎏당 5천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거래가를 지켜보던 축산농민들 사이에 “송아지 키워 송아지값 받는 꼴”이라는 말이 나왔다. 최금식(72·결성면)씨는 “축산농민들 다 죽는데 정부는 내용도 없는 대책만 줄줄 내놓고 미국 쇠고기 수입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여수·보성 등 8개 시·군 560여 곳의 한우 농가가 참여하는 ‘순한한우 사업단’ 천창환(39) 단장은 “결국 정부가 재협상을 통해 검역 주권을 확보해야 국민들의 쇠고기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산 홍성 보성/박영률 송인걸 정대하 기자 ylpak@hani.co.kr
전남 여수·보성 등 8개 시·군 560여 곳의 한우 농가가 참여하는 ‘순한한우 사업단’ 천창환(39) 단장은 “결국 정부가 재협상을 통해 검역 주권을 확보해야 국민들의 쇠고기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산 홍성 보성/박영률 송인걸 정대하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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