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개 범죄유형 추려…강제성 없어
50억 횡령땐 징역 7년 등 “형평 확보”
50억 횡령땐 징역 7년 등 “형평 확보”
지난해 1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회삿돈 9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몽구(70)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서 정한 최저형인 징역 5년보다 ‘고작’ 1년이 많은 구형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검찰사건처리기준’에 따르면 50억원 이상 횡령한 사람에게는 징역 7년이 구형 기준선이 된다.
대검은 이날 “형평성과 일관성 확보를 위해 지역 검찰청별로 나뉘어 있던 사건처리기준을 전국적으로 통일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4~2006년 기소된 345만여명의 1심 형량과 검찰청별 처리기준을 종합하면서 1543가지의 범죄유형을 뽑아 구속, 기소, 구형, 벌금 기준을 마련했다.
■ 50억 이상 횡령…구형 기준 7년 검찰은 ‘재벌에 약하다’는 비판과 함께 ‘봐주기 수사’, ‘고무줄 구형’ 등의 비판을 들어왔다. 새 기준을 보면, 횡령·배임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라 형법이 아닌 특경가법이 적용될 때는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도록 했다. 구형은 횡령·배임액이 △5억 이상은 3년 △20억 이상은 5년 △50억원 이상은 7년 이상 구형하도록 기준을 잡았다. 횡령·배임죄의 법정형량은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3년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기업인들의 횡령·배임 사건 이득액이 50억원을 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새 기준은 법원의 온정적인 선고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형법상 횡령·배임죄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득액이 3천만원 이상이면 구속 수사를 하고 1천만원 이상이면 기소하도록 했다. 또 뇌물죄는 △수수액 3천만원 이상은 5년 이상 △5천만원 이상은 7년 이상 △1억원 이상은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구형하도록 했다. 13살 미만 여아 성폭행은 구속 수사와 징역 5년 이상 구형을 원칙으로 세웠다.
■ 기준일뿐 구속력은 없어 일선 검사들은 새 기준이 검찰청별로 시행하던 기존 처리기준과 큰 차이는 없다면서도 ‘고무줄 구형’ 의 여지를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새 기준은 말그대로 ‘기준’일 뿐이라 강제성은 없다. 안태근 대검 정책기획과장은 “대검 차원의 기준을 바탕으로 구체적 사정 등을 종합해 탄력적으로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에 따르면, 죄의 내용상 구속해야 할 사안도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 등에 따라 불구속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통일된 기준인 만큼 검사들이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안 과장은 “기준과 다르게 처리해도 이를 소명할 필요는 없지만, 큰 편차는 결재 과정에서 걸러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의자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새 기준을 전면 공개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또 내년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양형 기준을 마련하면 그 내용을 사건처리기준에 반영하기로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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