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매긴 범죄사례별 양형 기준
대법 양형위원회 보고서
뇌물죄 기대형량 4배차
뇌물죄 기대형량 4배차
길 가는 사람을 때려 쓰러뜨린 뒤 지갑에 든 200만원을 빼앗은 사람(강도)과 200만원을 뇌물로 받은 공무원(뇌물수수) 가운데 누구의 죄가 더 무거울까?
법정형을 기준으로 보면, 징역 3년 이상이 선고될 수 있는 강도죄가 최대 징역 5년 이하가 선고되는 뇌물죄보다 훨씬 중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화이트칼라 범죄인 뇌물 사범을 강도보다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물죄에 기대하는 징역형 형량도 실제 선고된 형량보다 4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법원 선고와 국민 법감정의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석수)는 지난 1월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형벌의 종류와 형의 정도에 대한 인식을 개별 면접방식으로 조사한 결과를 담은 <2007 연간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위원회는 10가지 범죄사례와 기준범죄를 제시하고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1~10점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한 뒤, 이를 법정형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한 법정형 점수와 비교했다.
보고서를 보면, 국민들은 도주차량죄(치사)에 평균 9.1점, 미성년자 강제추행 9점, 살인 8.2점, 뇌물수수 6.3점, 강도와 횡령 5점, 절도 4.9점, 사기는 4.7점을 줬다.(표 참조) 뇌물수수 및 횡령죄의 법정형 점수는 10가지 범죄사례 가운데 가장 낮은 1~2점에 불과했지만, 국민들은 이를 강·절도나 사기보다 무거운 범죄로 여기는 것이다. 또 뇌물수수와 횡령죄에 기대하는 형량 역시 37.8개월과 30개월인 데 견줘 법원에서 같은 죄목에 선고된 실제 평균 형량은 10개월씩에 지나지 않았다. 살인 등 일반인들이 직접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대체로 법정형에 따른 범죄의 중대성과 비슷한 인식을 보였지만, 미성년자 강제추행·존속상해의 경우에는 기대 형량이 실제 선고 형량보다 3~4배까지 많았다.
한편, 양형위원회는 2004~2006년 사이에 유죄가 확정된 형사사건 피고인 68만여명 가운데 4만2천여명(6%)의 1심 판결문과 수사기록 등을 통해 학력, 직업, 가족 관심 정도, 전과, 범행 동기와 시간·장소, 음주 여부 등 양형을 결정하는 수백개 요인과 실제 양형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도 함께 내놨다. 이를 보면, 선거사범의 경우 무려 78.8%가 벌금형(징역형의 실형은 3.1%)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의원직 등을 유지할 수 있는 ‘100만원 미만 벌금형 선고’가 남발된 탓으로 보인다. 집행유예 비율(전체 평균 45.9%)이 60%가 넘는 범죄는 △뇌물(60.3%) △교통사고(64%) △조세(70.5%) △방화(71.4%)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법 불신의 주요인인 ‘전관예우’가 양형에 끼치는 영향 분석은 빠졌다.
지난해 4월 판사의 재량을 줄이고 양형의 일관성을 높이고자 출범한 양형위원회는 국내 판결 기록과 국외 양형제도 등을 분석한 뒤 내년 3월께 양형기준을 발표할 방침이다. 16일에는 첫 공개토론회를 연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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