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억 타가라’ 사기단 활개
인감증명서 등 빼내기 시도
인감증명서 등 빼내기 시도
부산에 사는 김판근씨는 지난 3월25일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끌려갔던 부친 김인형씨의 보상금 10억원이 나왔으니 타가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를 남긴 곳은 관공서가 아닌 개인 사무실이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 관계자는 “김씨가 받은 문자는 보상금 지급에 필요한 인감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는 이들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원회가 이달 출범하면서 보상금을 노린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 11일 출범한 위원회는 조선에서 강제동원이 시작된 1938년 4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제에 의해 군인·군속·노무자로 끌려갔다가 숨진 피해자 유족들에게 2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한다. 지원 대상은 △사망자 유족 △생존 피해자 등으로, 살아 돌아온 뒤 숨진 피해자들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은식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은 “보상법 입법 논의가 시작된 2000년대 초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상금을 받아줄 수 있다’고 꼬시는 전문 사기단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수법도 유명한 미국 변호사의 이름을 팔거나 난립해 있는 유족회와 종교단체를 등에 업는 고전형부터 ‘보이스 피싱’을 활동하는 첨단형까지 진화하는 추세다.
비슷한 피해가 잇따르자 위원회는 지난 9일 “위원회 등 정부 기관은 보상금 지급과 관련해 어떤 대행 업무도 위탁한 바가 없다”는 긴급 공지문을 누리집(gangje.go.kr·사진)에 띄웠다. 김은식 사무국장은 “위원회가 요구하는 서류 목록이 너무 복잡해 노인들이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다”며 “각 지자체에 노인들의 서류 작성을 돕는 지원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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