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포이동 ‘수정마을’(사진)
포이동·문정동 비닐하우스촌 아직도 전입 못해
재판 승소해도 지자체 ‘배짱’…눈물도 말랐다
재판 승소해도 지자체 ‘배짱’…눈물도 말랐다
서울 강남구 포이동 ‘수정마을’(사진)의 배아무개(56)씨가 마을로 흘러든 것은 15년 전이다. 그는 “애초 살던 도곡동 가건물은 불이 나 잿더미로 변했는데, 집 주인은 땅을 판 뒤 세입자들을 외면했다”고 말했다.
수정마을로 이사는 마쳤지만 포이동 주민은 될 수 없었다. 강남구가 “비닐하우스는 주거용 건물이 아니다”며 배씨의 주민등록 전입신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배씨의 아들(25)은 초등학교 5년 동안 코 앞에 초등학교를 두고 도곡동까지 걸어 통학해야 했고, 배씨는 ‘전학’을 종용하는 학교에 불려가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박순척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선교사는 “주소지를 찾으려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싸움이 벌써 올해로 10년”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1월 서울 문정2동에 자리한 ‘화훼마을’이 느닷없는 불로 전소되면서다. 국가는 그동안 “수돗물을 넣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여름철 방역에도 신경쓰지 않았고, 주민등록 전입신청도 거부해왔다. 보다 못한 지역 시민단체와 참여연대 등이 2000년 8월 ‘주민등록 전입신고 거부 취소’ 소송을 시작해 이듬해 1·2심에서 잇따라 승소 판결을 끌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촌이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강남·서초·송파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원호 주거권 실현을 위한 주민연합 조직국장은 “대법원 패소로 ‘판례’가 굳어질 것을 염려한 송파구는 상고를 포기했다”며 “그 때문에 주민들이 마을 단위로 소송을 진행하는 고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하나둘씩 내려진 화훼마을·개미마을·꿀벌마을·잔디마을의 소송에서 법원은 꾸준히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패소가 잇따르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2004년 10월 전국 각 시·도에 “지자체는 관내 빈곤층 집단거주지역을 조사한 뒤 주민들을 적극 전입 조처하라”는 지침을 내놨지만, 지자체는 지금껏 요지부동이다. 지난 4일, 서울고등법원은 “무허가 건축물이라고 주민등록 전입을 거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다시 한 번 잔디마을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수정마을의 이아무개(54)씨는 “가끔 우편물이 찢겨진 채로 전해 오는데 그때마다 자괴감과 수치심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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