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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초산 62t 엔진오일 위장’ 아프간인 등 2명 검거
헤로인 30t 정제 분량…한국 경유지 삼은 첫 사례
헤로인 30t 정제 분량…한국 경유지 삼은 첫 사례
대량의 마약 원료를 우리나라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의 근거지로 밀수출하려 한 일당이 경찰과 국정원, 서울세관 등의 공조수사로 검거됐다. 적발된 마약 원료는 무려 62t 규모로, 경찰은 이들 일당은 한국의 마약청정국 지위를 이용해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4일 헤로인의 원료인 무수초산을 엔진오일 등으로 위장해 국외로 밀수출하려 한 혐의(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아프가니스탄인 ㅋ(47) 등 두 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ㅋ은 국내 체류 중인 인도인 등을 고용해 일본에서 수입한 무수초산 12t을 경기 안산의 한 화공약품 공장에서 엔진오일 등으로 둔갑시킨 뒤 이란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서남부 님로즈로 수출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님로즈는 무장단체 탈레반의 활동 거점으로 납치와 폭탄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ㅋ은 경찰 조사에서 “탈레반의 심부름으로 무수초산을 님로즈의 현지 탈레반 조직에 넘기려고 한 것은 맞다”고 진술했지만, 자신은 탈레반 조직원은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또 ㅋ 등이 무수초산을 밀수출하는 데 사용한 돈이 이슬람권의 테러 자금 유통원으로 꼽히는 ‘하왈라’의 환치기 조직에서 나온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앞서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과산화수소수로 위장한 무수초산 50t을 아프카니스탄으로 밀수출한 혐의로 파키스탄인 ㅋ(40) 등 세 명과 화공약품 도매상 한국인 김아무개(52)씨 등 네 명을 검거한 바 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또 국외로 달아난 공범 한 명을 인터폴 공조로 붙잡았고, 나머지 공범 세 명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들이 빼돌리려 한 무수초산 50t 가운데 36t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 탈레반 등 무장단체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찰의 이번 발표로 압수되거나 이미 밀수출이 된 것으로 파악된 무수초산 62t은 헤로인 30t 이상을 정제할 수 있는 막대한 분량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한편, 2001년에도 이란인이 국내에 위장회사를 차린 뒤 무수초산 91t을 직물원단으로 위장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밀수출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잠잠했던 마약 원료 관리가 허술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수초산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상 관리대상 물질로 지정돼 있어 엄격한 관리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유통경로에 대한 특별한 관리 없이 다른 제품으로 위장돼 수출되고 있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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