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열린 6.10항쟁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막기위해 광화문 네거리에 쌓아놓은 컨테이너 장애물에 시민들이 명박산성이라 이름 붙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불후의 명작, 촛불의 명 카피들
미친 2MB, 명박산성 등 직설-은유 버무려 ‘말대포’
온-오프 넘나 들며 집단지성 상상·표현 ‘무한도전’
미친 2MB, 명박산성 등 직설-은유 버무려 ‘말대포’
온-오프 넘나 들며 집단지성 상상·표현 ‘무한도전’
2008년 5월과 6월엔 ‘말’이 있었다. 80년 광주의 5월과 87년 광화문의 6월에도 물론 ‘구호’가 있었다. 그러나 달랐다. 촛불은 ‘언어의 마술’을 지폈다. 온-오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전경차와 마주한 ‘경계의 광장’에서 ‘말의 향연’을 펼친 것이다.
‘2MB, 너나 쳐드삼!’ ‘미친 2MB, 너 때문에 우리가 미쳐! 2MB OUT!’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시위를 즐기고 즐거움을 ‘시위’하며 분노하고 저항
두달 넘게 도심에서 불타던 촛불은 잦아 들고 있지만, 촛불이 피워 올린 불후의 명 카피들은 여전히 온-오프라인에서 타오르고 있다. ‘촛불 시민’들 사이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는 ‘2MB’다. 단지 이니셜만이 아니다. 디지털의 저장 용량인 byte에서 따왔다. 2 메가바이트는 노래 한 곡도 채 담을 수 없는 용량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빗댔다. IT세대들의 ‘말’이 능청스럽지 않은가.
‘광우병소’는 ‘미친소’로 더 많이 불린다. ‘이명박 정부’는 ‘미친 정부’로 통한다. 이명박 정부를 규정하는 프레임은 제도권 언론이 아니라 ‘거리의 언론’이 만들어 유통시켰다. 직설과 은유를 버물어 시위를 즐기고, 즐거움을 ‘시위’하며 분노하고 저항했다.
하나의 단어가 등장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고유명사화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일반적인 언어의 사회화 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단어와 문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생산도, 공감도, 이해도, 습득도 새로웠다.
2003년 탄핵 정국에서도 ‘톡톡’ 튀는 패러디 문구와 사진, 포스터, 영상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등에서 활약하는 누리꾼들이 패러디물을 만들었고,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를 즐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정국에서는 달랐다. 몇몇 누리꾼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문구와 카피를 다수의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개개인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주제로 활용됐다. 청계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담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문구 역시 기발했다. 그만큼 누리꾼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무한도전’했다.
▶Boys, be MB Shuts, 촛불 내 돈으로 샀다, 우리 이제 방학이다…본질 압도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Boys, be MB Shuts(소년이여, MB 입 좀 막아라)’, ‘Be the Cats.(‘쥐를 잡는’ 고양이가 되자)’, ‘미친 쥐에 경읽기:그래도 한다!’ 등이 5월 초가 지나면서 등장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2MB’, ‘쥐(박이)’로 더 많이 불리게 된다. 간명하고 명확한 구호는 현상을 넘어 본질을 찌르는 예리한 비수다.
6월10일 경찰이 세종로 네거리에 쌓은 콘테이너 바리케이드를 향해 붙여진 ‘명박산성’은 이번 촛불정국에서 등장한 카피 중의 카피라고 불릴 만하다. 시민들은 콘테이너 앞에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펼침천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맞세워 쌓은 스티로폼을 ‘시민산성’이라 이름 붙였다. ‘청와대 행진’을 막아선 전경버스에 붙여진 스티커 ‘불법주차’ 또한 명 카피 중의 하나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이 진행되자 ‘닭장투어’라는 말과 행동으로 조롱했고, 경찰의 물대포를 ‘비데’라는 단어로 응수한 것도 명 카피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재치 만발
촛불 시민들의 재치와 상상력은 정부와 보수언론이 제기한 ‘배후세력 음모론’과 ‘촛불 쇠퇴론’ 앞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이제 방학이다”라는 카피다. 간단 명료하면서도 정부와 보수언론의 논리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킨다. “이명박이 배후다”와 “촛불 내 돈으로 샀다” 같은 카피는 촛불에 대한 상투적인 흠집내기를 되받아치는 재치가 절묘하다.
보수언론을 꼬집는 카피들은 훨씬 냉소적이고 조롱에 가깝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버럭! 님하! 저거 찌라시! 우리집 강아지는 조중동을 깔개로 주면 주인도 물어버린다!(찬조출연: ytn, sbs, 매경, 한경)’, ‘조선이 신문이면 똥파리는 독수리다’…….
카피라이터 정철씨는 “누리꾼들이 만든 표어나 문구들이 너무 기발해 놀랐다”며 “특히 ‘우리 이제 방학이다’의 경우 전문 카피라이터나 광고인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라고 평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씨는 “청계광장의 손팻말 속 메시지는 명료하고 유머감각이 살아 있으며, 전달 방식 또한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쳐난다”며 “촛불집회의 카피들은 정말로 훌륭했다”고 말했다.
▶“온수! 온수”, “노래해! 노래해”…무마 하려는 경찰 단숨에 ‘무마’
이번 촛불 정국에서 이같은 문구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첫째,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이 한 단어, 혹은 한 문장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2MB, 너나 쳐드삼!’, ‘이명박, 넌 아~무것도 하지마!’,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 건 네가 첨이다!’ 같은 문구는 광우병 소와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단숨에 드러내고 있다.
과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를 통해 ‘대박’을 터뜨린 한 전자제품의 광고와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하나씨는 “‘넌 아무것도 하지마’ 안에는 ‘네가 하는 게 다 마음에 안들고 화가 난다’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다”며 “정말 기발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둘째, 재치가 넘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경찰의 물대포가 쏟아질 때 “온수! 온수”라고 외친 것이 대표적이다. ‘온수’라는 말 속에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에 대한 비꼼과 시민들의 비폭력 지향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유머스럽다. 경찰이 시위대를 무마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면 “노래해! 노래해”라고 하거나 “개인기! 개인기!”라고 외쳐 경찰을 거꾸로 단숨에 ‘무마’해 버렸다.
정철씨는 “좋은 카피란 출중한 능력과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분명 한계가 있다”며 “마음으로 쓰고, 생활에서 느낀 것을 유머와 재치 속에 녹였을 때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촛불정국에서 등장한 카피들이 대체로 그랬다”고 설명했다.
▶‘쥐박이’ ‘이명박이 배후다…거침 없이 ‘생각대로 하면 되고'
셋째, 마케팅을 염두에 둔 카피와 달리 제약 없이 자유롭게 상상력의 날개를 펼 수 있었던 환경의 덕이다. 광고주나 광고회사의 입장, 소비자의 반응, 상품의 주 사용자를 밑바탕에 둬야 하는 광고 카피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 반면,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카피들은 이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거침 없이 ‘생각대로 하면 됐’다. ‘쥐박이’나 ‘이명박이 배후다’ ‘쥐를 잡자’ 등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넷째,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인터넷이라는 소통 창구를 통해 개방되고, 서로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끌어 주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번 촛불 정국에서는 대체로 다음 아고라를 주축으로 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안됐고, 반론과 댓글 등을 통해 의견이 정제되는 수순을 밟았다.
정철씨는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일방적으로 선보인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들이 더해져 많은 대중이 공감하는 최첨단의 카피가 생산됐다”며 “인터넷을 통해 소통과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 좋은 카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평했다.
김하나씨는 “촛불정국에 등장한 카피 대부분은 사람들이 들고 나온 손팻말을 보고 웃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감하는 문구들을 가져다 다른 사람이 활용하고, 발전시킨 것들이었다”며 “집단의 아이디어가 결합되면서 더 나은 카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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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2003년 탄핵 정국에서도 ‘톡톡’ 튀는 패러디 문구와 사진, 포스터, 영상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등에서 활약하는 누리꾼들이 패러디물을 만들었고,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를 즐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정국에서는 달랐다. 몇몇 누리꾼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문구와 카피를 다수의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개개인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주제로 활용됐다. 청계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담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문구 역시 기발했다. 그만큼 누리꾼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무한도전’했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배지호, 김향남, 배가영씨 가족이 “한국 촛불들 힘내시라”고 외치고 있다. 파리= <한겨레21> 윤석준 전문위원

서울광장과 태평로를 가득 메우고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6일 저녁 촛불을 밝혀든 채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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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72시간 촛불집회 이틀째인 6일 오후 서울 동십자각 인근에서 한 가족이 촛불가면을 쓰고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10 민주항쟁 21돌 기념일인 10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에서 덕수궁을 지나서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100만 촛불 대행진’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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