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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임신 후반까지 안알려 부모 기본권 침해”
생명권 보호 뒷걸음·성비 불균형 악화 우려
생명권 보호 뒷걸음·성비 불균형 악화 우려
임신기간에 관계 없이 태아의 성을 알려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이에 따라 임신 후반기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 길이 열렸지만, 여전한 남아선호 풍조와 맞물려 낙태와 성비 불균형 악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31일 “낙태가 사실상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성별 고지를 막는 것은 의사의 직업수행 자유와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위헌 결정으로 생기는 법의 공백을 막고자 법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해당 법 조항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이번 결정은 태아의 성을 일러 줬다가 면허를 정지당한 의사 등이 낸 헌법소원의 결과다.
헌재는 “낙태 방지와 성비 불균형 해소,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법이 만들어질 때와 견줘 남아선호 경향이 현저히 줄었고, 전체 성비 역시 2006년 107.4로 자연성비(106)에 근접했다”며 “과연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사회문제인지, 성별 고지가 낙태 원인으로 작용하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흡 재판관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호기심에 불과한데다 임신 후반기에도 낙태 가능성이 있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헌재는 내년 말까지 의료법을 개정하라고 국회에 권고했다. 모자보건법은 부모에게 유전적 질환이 있는 경우 등 다섯 가지 유형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지만, 임신 28주 뒤에는 산모 건강을 위해 낙태를 막고 있다. 따라서 임신 28주가 태아 성 고지 합법화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형법의 낙태죄로 성 감별에 따른 낙태를 제재할 수 있다며 의료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의료법은 태아의 성을 알려준 의사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엄마를 닮았다’는 식의 편법이 쓰였다.
복지부는 2005년 기준으로 ‘원치 않은 성별’이 이유인 낙태가 2500여 건이라며 법 개정 반대 뜻을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공개변론에서는 임신 31주째에 낙태한 사례가 거론됐다. 2005년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첫째아이는 104.8로 어느정도 균형을 이뤘지만, 셋째아이의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28.2로 ‘선택 출산’ 경향이 지속됨을 보여 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남아선호 사상이 상당히 불식됐고, 임신 주수가 일정 정도 지나면 태아의 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헌재 결정을 반겼다. 그러나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윤리위원회 사무국장)는 “법 개정 과정에서 사실상 낙태를 할 수 없는 시점을 명확히 규정하는 등 보완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생명윤리학계와 종교계에서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김남일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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