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어떤 영화인지 규정없어 명확성 원칙 위배”
주관적 심의 줄듯…영화계 “표현자유 보장해야”
주관적 심의 줄듯…영화계 “표현자유 보장해야”
헌법재판소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법(영비법)의 ‘제한상영가 등급’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제한 상영의 기준을 명확히 하라는 취지이지만, 법이 개정되면 영화계가 비판해 온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주관적 등급 분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31일 “영비법은 어떤 영화가 제한상영가 영화인지 규정하지 않아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영비법은 제한상영가 영화를 ‘상영 및 광고·선전에 있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 규정은 제한상영가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말해주기보다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가 나중에 어떤 법률적 제한을 받는지만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옛 영화진흥법(현 영비법)이 표현의 자유 제한과 관련된 사안을 영등위에 위임하고 있어 포괄위임금지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내년 말까지 영비법 관련 조항을 개정하라고 국회에 권고했다.
영화수입 업체 월드시네마는 2005년 멕시코 영화 <천국의 전쟁>의 등급분류를 영등위에 신청했다. 영등위는 성기가 노출되고 노골적 성행위 장면 등이 여과 없이 묘사됐다며 ‘18세 관람가’보다 엄격한 ‘제한상영가’ 등급판정을 내렸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이 영화는 독일, 영국, 브라질에서는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네덜란드에서는 16살 이상 관람가로 개봉했다. 업체 쪽은 “영화진흥법의 등급분류 기준이 모호하다”며 등급판정 취소소송을 진행하던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등급제를 시행한 2002년부터 지금까지 23편을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장면 삭제를 한 뒤 재신청해 18살 관람가 판정을 받은 영화를 빼고 11건이 최종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계는 제한상영가 영화관이 없어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은 사실상 개봉금지 결정이나 마찬가지이며, 내용이나 주제에 상관 없이 단순히 선정성 등의 기준을 적용해 등급을 결정한다고 비판해 왔다.
영화계는 헌재의 결정을 반기면서, 향후 입법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변호사로 이 사건의 청구소송을 맡았던 조광희 영화사 봄 대표는 “제한상영등급을 받으면 사실상 영화를 틀지 못하게 되므로, 이 등급은 아주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위헌 시비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1996년 영화법의 사전심의 조항, 2001년 영화진흥법의 등급보류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남일 이재성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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