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성당못 근처 만남의 광장에서 빛 소리 동호회원들이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창단을 제안한 심업씨.
대구 ‘빛소리 동호회’ 1년 넘게 무료 공연
공무원·경찰·버스기사 등 50~60대 12명
“부모님께 못한 효도 어르신께 하고파” 시작
공무원·경찰·버스기사 등 50~60대 12명
“부모님께 못한 효도 어르신께 하고파” 시작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에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젖어~.”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성당못 근처 만남의 광장에서는 흘러간 옛 노래들이 색소폰으로 연주된다. 근처에서 바둑을 두거나 산책을 나온 노인 200여명이 선율을 따라 삼삼오오 모여든다. 하얀 셔츠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일곱 명의 거리 악사들은 황금빛 색소폰을 들고 <밤차>, <정 때문에>, <대전블루스> 등 트롯트 70여 곡을 두 시간동안 쉴 새 없이 연주한다.
이들 빛소리 동호회는 공무원, 경찰, 버스기사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50~60대 색소폰 연주자 12명이 뜻을 모아 지난해 8월 만들었다. ‘소외된 계층에게 소리로 빛을 전하자’란 뜻을 살려 그동안 무료 색소폰 공연을 해왔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두류공원에서, 2·4주째 토요일에는 대구 앞산공원 무료급식소 앞에서 오전 공연을 한다. 주중엔 월차까지 내고 마을 경로잔치나 노인돕기 자선바자회 무료공연을 하는 회원들도 있다.
빛소리 동호회를 처음 제안한 심업(50·케이티 근무)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좋아하던 노래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다 못다한 효도를 다른 어르신들에게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연 경비는 회원들의 회비로 부담한다.
이들은 대구 노인들에게 신세대그룹 ‘동방신기’와 맞먹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노인팬들은 연주에 맞춰 “잘한다” 하며 연신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할머니들 중에는 앞산공원의 오전 11시 공연을 보고 나서 택시를 타고 두류공원 3시 공연을 또 보러오는 열성팬도 있다. 매번 음료수를 챙겨주거나 쌈짓돈을 꺼내 기부하는 노인들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문화 혜택을 누리기 힘든 이곳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색소폰 연주를 접하는 즐거움은 크다.
어려움도 있다. 공연 도중 술취한 이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비가 와 급히 음향기기를 들고 철수해야 할 때가 그렇다. 그래서 빛소리 동호회는 대구시 문화예술봉사단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봉사단으로 지정받으면 활동 비용도 일부 지원받고 비 걱정 없는 상설 공연장소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회원 이상일(51·미8군 군무원)씨는 “공원사무소나 시청에서 천막이라도 설치해 줘서 안정적인 공연을 했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말했다.
“일흔 살이 되던 여든 살이 되던 배에 힘이 없을 때까지 색소폰을 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회원들은 오늘도 입 안 가득 바람을 넣어 흘러간 세월과 추억을 연주한다.
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박현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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