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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민이 권력이다” 거리 나선 개인들 직접행동

등록 2008-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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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00일을 말하다]
3. 직접민주주의를 배우다
지난 6월27일 새벽 0시30분께, 경찰의 진압으로 시민들이 인도로 쫓겨나던 순간, 민주당 의원 6명이 시민 대열의 선두에 등장했다. 의원들은 “(시민들이 무차별 연행되지 않도록) 우리가 몸으로 막겠다”고 외쳤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신들이 정신 차렸으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다”는 비판과 “같이 물대포를 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면박이 쏟아졌다.

‘민심 겉도는 기성정치’ 대의민주 틀 작동안해
급식·수돗물 등 풀뿌리 생활운동 ‘촛불’ 주도
‘거리의 함성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새 화두

촛불집회 100일 동안, 시민들은 거리에서 온몸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롯한 정부정책에 저항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들이 기댈만한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야당은 무기력했고, 진보정당은 왜소했다. “나는 (이명박을) 찍지 않았‘읍’니다”라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정치 지형 앞에서 민주주의의 원칙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맛보았다.

그러나 촛불이 ‘절망’만을 남긴 건 아니다. 살아움직이는 한국의 집회·시위 문화는 역설적으로 ‘직접민주주의’가 교과서에만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생각해보면 87년 체제를 통해서 시민들은 대의제가 작동 불능이나 오작동 상태일 때마다, 그리고 87년 민주화의 성과가 무화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직접민주주의적 행동을 개시했다. 1996년 노동법파동 때 그랬고, 2000년 총선연대, 2004년 대통령 탄핵 반대시위가 그랬다.”(6월11일, <창비 주간논평>, 김종엽 한신대 교수)

김 교수는 특히 이번 ‘촛불’이 과거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이를 상회하는 혁신과 변화의 징후들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1987년 이후 쌓아왔던 직접민주주의 행동방식이 이번 ‘촛불’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촛불의 어떤 점이 그렇다는 것일까?

우선 시민들은 익숙한 것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과거의 경험을 발전시키되, 과거 집회 때 익숙했던 집회의 방식과 주체(시민단체, 진보진영, 반미구호 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했다. 약속된 집회 공지와 시위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토론과 연계해 시위 형태가 결정됐고, 다양한 시위도구와 준비되지 않은 자유발언은 과거 집회와 다른 모습을 띠었다. 대책회의가 실무를 준비했으나 집회를 주도하진 못했고, 시민·누리꾼들의 끊임없는 견제와 이의제기에 긴장했던 점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운동단체의 깃발과 반미구호도 촛불 대중에게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직접 민주주의의 등장과 강화는 역설적으로 ‘진보의 실패’를 뜻한다”고 말했다. 촛불 대중의 ‘거리두기’가 지금껏 거리정치를 이끌었던 기존 시민단체들과 진보진영에 심각한 고민을 던진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촛불’은 직접민주주의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가능하게 했다.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 때는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함성만으로도 정치 권력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는, 직접민주주의가 이제는 시민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단체는 모두 1800여개인데, 기존 집회를 주도하던 시민사회단체를 제외하면 생활협동조합 등 비정치적 단체나 지역 풀뿌리 단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촛불’을 주도했던 누리꾼 가운데 상당수가 생활카페 회원들이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더구나 시민들은 이런 생활정치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을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축적해 오고 있다. 2003년 여름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자는 ‘학교급식운동’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14만6258개의 서명을 모았으며, 5년의 투쟁 끝에 결실을 맺었다. 2007년 여름 경기 하남에서는 ‘광역 화장장’을 유치하려던 김황식 하남시장을 저지하기 위한 주민소환제가 발동됐다. 그해 겨울, 전북 남원 시민들은 ‘수돗물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193일 동안 촛불집회를 이어갔다.

하남의 실험은 실패했고 남원은 목적을 달성했지만, 경험은 고스란히 남았다. 문제는 이런 생활정치 영역은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함께 가야하는데, 우리 정치 풍토는 지나치게 중앙 집중적이라는 점이다. 서울 강동·송파 지역에서 지역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는 최영선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도심에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지역에서 ‘촛불’을 기획했지만 지금은 매우 혼란스런 느낌”이라며 “촛불이 비폭력과 축제라는 ‘이미지’로 사람을 끌어모았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과 의무가 주어졌을 때 ‘이미지’는 곧 사그라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길윤형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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