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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자활근로대’를 아십니까?

등록 2008-08-19 16:56

무허가 건물의 장기 거주자들도 주민등록 전입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18일, 서울의 대표적인 무허가 판자촌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자활근로대 마을에서 만난 주민 유도관씨는 “정부의 단속과 강제이주 과정에서 당한 고문 때문에 환청이 심하다”고 말했다. 길윤형기자 <A href="mailto:charisma@hani.co.kr">charisma@hani.co.kr</A>
무허가 건물의 장기 거주자들도 주민등록 전입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18일, 서울의 대표적인 무허가 판자촌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자활근로대 마을에서 만난 주민 유도관씨는 “정부의 단속과 강제이주 과정에서 당한 고문 때문에 환청이 심하다”고 말했다. 길윤형기자 charisma@hani.co.kr
유신정권 빈민·고아 ‘부랑아’ 관리
‘순화교육’에 무차별고문 잇단 사망
피해자들 환청 등 후유증 시달려
“짬뽕을 시켜준다길래, 웬일인가 싶었지.”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자활근로대 마을’ 주민 유도관(65)씨는 지난 7월부터 환청에 시달린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눈 앞에 뭉게구름이 모여들고, 이내 검은 태풍이 일며, 파도 소리 같은 굉음이 그를 포위한다. 유씨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신발도 못 신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고 말했다.

유씨의 고통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79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넝마주이, 전쟁고아, 구두닦이 같은 도시 부랑아들을 관리하기 위해 ‘자활근로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국가의 감독 아래 건전한 생활에 힘쓰라’는 취지였지만, 실제 운영은 전혀 달랐다. 범죄자 소탕을 위한 ‘후리가리’(일제단속) 철이 돌아올 때마다, 무차별적인 경찰 단속과 뒤이은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어느 날, 마을 안 판잣집에서 자고 있던 유씨를 경찰들이 몰려와 잡아갔다. 잡혀 간 그에게 경찰들은 짬뽕 한 그릇을 시켜줬다. 그가 허겁지겁 국물을 들이키자 경찰들이 ‘국물은 다 마시지 말라’고 말했다. 경찰은 그를 긴 의자에 잡아 눕힌 뒤 얼굴에 수건을 덮고, 남은 짬뽕 국물을 붓기 시작했다. 고통 속에서 환청과 비슷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죄 없이 전기고문도 당하고, 얻어 맞은 경험은 셀 수도 없다”고 말했다.

81년 등장한 ‘순화교육’이란 이름의 삼청교육대는 더 큰 시련이었다. 다행히 유씨는 이를 피했지만, 박민우씨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온 뒤 정신을 놓아 매일 술 먹고 소리를 지르고 울며 지내다 결국 양재천 물에 빠져 숨졌다. 주민들은 박민우, 김경, 중철이(성은 모름), 정점수, 김귀성 등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동안 과거사위원회 등을 통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서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인권침해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묻혀 있던 많은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 왔지만, 자활근로대만은 예외였다. 마을 주민 박동식씨는 “학출(학생출신 활동가)이 없어서 그랬는지, 2000년대 초까지 누가 우리 얘길 들어준 적도,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국가는 그동안 저지른 잘못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조차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사회당이 자활근로대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시작했지만, 자료 부족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국가기록원에는 자활근로대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만, 전체 현황 자료는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다. 1982년 11월10일 국무회의 자료를 보면, 전국에 남아 있던 자활근로대원은 2395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서울시는 2009년 말까지 이들의 마을을 허물고 장기전세 임대주택 ‘시프트’(250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신희철 사회당 빈곤철폐특위위원장은 “마을이 사라지면 자활근로대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게 된다”며 “사회적 약자 가운데 약자였던 이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길윤형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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