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처 물색 실패…“알려지면 관심 커져” 언론 접촉
1100만여명의 개인정보를 자회사 관계자가 빼돌린 것으로 드러난 지에스칼텍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지금까지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견줘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우선 국내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는 대기업 테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내부자가 직접 범죄에 나선 점이 눈에 띈다. 또 피의자들은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 등으로 개인정보 오·남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점을 역으로 이용해,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언론에 흘려 이 정보에 대한 주목도와 활용도를 높이려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 내부자 범죄에 무방비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정아무개(28)씨는 지에스칼텍스 콜센터 운영을 담당하는 ㄴ사에서 콜센터의 시스템 관리를 맡고 있었다. 상시적인 관리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없이 ‘보너스카드 고객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었다. 사건이 터진 뒤 “(데이터베이스 관리는) 단독작업이 아니라서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도 고객정보를 빼내긴 힘들다”는 지에스칼텍스 쪽 주장과는 다른 셈이다.
특히 경찰은 “정씨가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고, 처음엔 고객 정보를 한꺼번에 내려받으려다 서버가 다운돼 실패해 여러 차례 나눠 정보를 내려받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정씨가 이 자료를 내려받는 데 걸린 시간은 한 달 정도였지만, 이 기간 동안 관리자란 이유로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에 내부자를 신속하게 검거할 수 있었지만, 내부자가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걸로 끝냈다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언론 이용 대담함도 내려받은 정보를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던 정씨 등은 처음엔 회사를 협박하는 방법도 논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쉽게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어,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판매처 등을 알아봤지만 역시 전문 브로커가 아닌 관계로 여의치 않았다고 이들은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달 초 왕아무개(28)씨와 김아무개(24)씨가 “유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 이 정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는 의견을 냈고, 김씨 등이 언론사 기자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노컷뉴스> 기자와 한 무료신문 기자, 방송사 피디 등을 만났고, 이들에게 해당 디브이디를 ‘쓰레기통에서 주웠다’며 복사본을 넘겼다.
이들의 의도대로 정보유출 사실은 대서특필 됐지만, 보도는 이들에게 ‘부메랑’이었다. 해킹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경찰이 내부 직원을 의심했고, 정보가 가공된 구조나 시점 등을 파악해 피의자 정씨를 특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들이 언론에 넘긴 사본을 현재 회수하고 있으며, 넘겨받은 사본이 또다시 복제됐는지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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