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문제 언급않고 위령사업 등 뒤로 미뤄
처리기획단 위상격하도 한몫 ‘이행 무성의’
유족단체들 “정부 무례함에 분노 느낀다”
처리기획단 위상격하도 한몫 ‘이행 무성의’
유족단체들 “정부 무례함에 분노 느낀다”
정부가 법적 근거에 따라 이뤄진 과거사 위원회의 ‘권고’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유족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5월 행정안전부 산하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기획단’(기획단)에 진상 규명 결정이 내려진 49건에 대한 ‘권고’ 내용을 확정해 이첩했다. 기획단은 이 가운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법원의 재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18건을 제외한 31건의 처리 방침을 정했다. 9월 현재 기획단에 이첩된 권고 사건 건수는 76건에 이른다.
그러나 기획단은 유족들의 핵심 관심사인 배상과 보상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고, 큰돈이 드는 위령 사업이나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 명예회복을 위한 법령 정비 등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달아 대부분 ‘추후 검토’ 과제로 미뤘다.
기획단이 지난 5월29일 권고에 대한 기본 방침을 정한 ‘정부 이행 기본계획 조정안’을 보면, 유일한 이행 사항은 ‘권고 사건에 대한 사과 및 집단희생 사건의 위령제 소요 예산 일부 지원’뿐이다. 구체 계획에는 △2009년 위령비 지원을 위해 국방부는 1억6천만원, 경찰은 1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경찰 학살은 해당 지역 경찰서장이, 군 학살은 국방부 국장급 공무원이 ‘사과’의 주체로 규정돼 있다.
구체적 사건별로는 예를 들어 1951년 경북 예천 산성동에서 미군 폭격으로 민간인 51명이 숨진 ‘산성동 미군폭격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미국이 도의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적극 협상하고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는 등 명예훼손 조처를 하는 한편 △군인 대상 인권교육 등 재발방지 조처를 할 것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기획단은 군인 교육·교양 자료로 활용하는 것 말고는, 미국 정부와의 협상과 위령비 건립 사업 등의 권고는 모두 검토 과제로 넘겼다.
이 때문에 유족들 사이에선 “정부의 성의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사후 조처”라는 애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호상 한국전쟁전 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수십년 동안 연좌제 속에서 고통 받아 온 유족들에 대한 정부의 무례함에 허탈감을 넘어 분노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허상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은 “정부의 과거사 역주행 기조로 볼 때 ‘추후 검토’로 처리된 내용들도 제대로 이행될지 의문”이라며 “과거 청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가 그동안 이뤄진 성과마저 스스로 뒤엎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단은 애초 진실화해위의 권고를 이행할 목적으로 지난해 8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꾸려졌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행안부 산하로 위상이 격하됐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