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심리학으로 본 묻지마 살인
사회에 불만을 품은 개인이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길가던 이를 아무 이유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등 올들어 일어난 ‘묻지마 살인’만 이번까지 벌써 네차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런 범죄는 우리 사회 자체에 내포된 병리적 현상이 표출되는 것”이라며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김아무개(25)씨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귀가중인 오아무개(41)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이전에도 여동생을 칼로 찌르거나 친할머니의 손발을 묶는 등 이상 행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강원도 동해시청에서 최아무개(36)씨가 시청 민원실로 뛰어들어가 근무 중인 공무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살기도 힘들고 싫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지난 4월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30대 남성이 “세상이 싫어졌다”며 길가던 여고생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하기도 했다.
경찰청이 집계한 범죄동기별 현황을 보면, 우발적 범죄는 2005년 35만9966건에서 2007년 38만6442건으로, 현실불만형 범죄 유형은 1만962건에서 1만247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이런 묻지마 범죄의 발생 건수가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범행 방식도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의 경우 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사회 안전성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이런 극단적인 범죄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사회 전체를 복수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치유력을 상실한 가정,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공동체 내부에서 정화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회에서 한 번 소외된 범죄자는 또 다시 사회적 약자를 범행 대상으로 찾게 된다”며 “비극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치유’ 대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사회적 이방인으로 자리매김한 개인들은 범행을 저지르기 이전에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며 “이를 미리 감지해 예방하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며, 이는 교육·복지·사법·치안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논의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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