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서관, 당시 판결문 번역
“작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이를 찾으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4천여년의 역사를 갖는 천하무쌍의 조국을 잃고 평화로운 안색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민족이 모두 독립만세를 부를 때 어떻게 혼자 묵과할 수 있는가.”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5월을 선고받은 ‘피고인 이창운’의 상고이유다. 일본인 검사와 판사 앞에서 독립의 정당성을 당당히 주장하는 모습에서 의기가 묻어난다. 조선총독부 고등법원(현재의 대법원 역할)은 같은해 8월11일 이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법원도서관은 고등법원판결록 중 1918~19년 민·형사 판결의 번역 작업을 마쳤다고 9일 밝혔다. 당시 판결문에는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기개와, 제국주의를 면전에서 비꼬는 대목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술에 취해 독립만세를 외치다 보안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유흥주씨는 비유법으로 자신에게 죄를 묻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수백년 동안 소유해 온 자신의 집을 옆집이 합병해 돌려받지 못할 때,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온통 노래와 춤을 추며 애쓴다고 해도 이를 돌려줄지 여부는 합병한 호주의 처분 여하에 달렸다. 그런데 죄를 묻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김명려씨의 상고이유는 일본의 ‘은혜’를 슬쩍 건드리다 조선 독립은 ‘하늘의 이치’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대일본의 은혜를 축하함은 우리 민족을 10여년 잘 교육한 결과 … 대일본에 의해 문명(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독립을 신속히 잘 판단한 후 하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엎드려 빈다.”
일본인 판사의 합리적인 선고도 간혹 눈에 띈다. “조선을 독립시킬 희망을 세상에 선언하는 내용에 그쳐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있고, 독립선언서를 인쇄·은닉한 사람들에 대해 “단순히 만세운동을 준비한 것만으로는 보안법 위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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