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침해 등 46개 불공정 조항
공정위, 연예기획사에 수정·삭제케
공정위, 연예기획사에 수정·삭제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신인가수 제이(가명)는 얼마 전 방송사로부터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았다. 평소 연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로서는 너무 반가웠지만 끝내 마음을 돌려야 했다. 소속 연예기획사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집을 피우고 싶었지만 모든 연예활동이나 제3자와의 계약체결은 기획사의 승인과 지시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 전속계약서에 발목을 잡혔다. 이것만이 아니다. 제이는 평소 어디를 가든 소속 기획사에 알려야 하고, 사생활 문제가 있을 때도 기획사와 사전상의를 한 뒤 반드시 지시에 따라야 한다. 모두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지만, 전속계약서에 규정돼 있는 내용들이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아 기획사에 불이익이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벌칙까지 붙어 있다.
이처럼 그동안 가수와 탤런트 등 연예인들을 울려온 일명 ‘노예계약서’가 사라지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일 10개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연예인들과 맺어온 전속계약서 내용 중에서 홍보행사 강제·무상출연, 과도한 사생활과 자율적 연예활동 침해 등 연예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는 10개 유형의 46개 불공정약관 조항을 시정하도록 조처했다고 발표했다.
전속계약서 내용을 보면, 연예기획사들은 연예인들에게 회사가 주관·주최하는 각종 홍보활동이나 행사에 횟수에 상관없이 무상출연하도록 강제해 왔다. 또 기획사가 연예인에게 계약해지 의사를 통보한 뒤에는 인세 등을 제외하고는 그동안의 연예활동으로 발생한 수익금을 모두 기획사가 독식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기획사에 사정이 생긴 경우 연예인의 동의 없이도 전속계약을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연예기획사들은 아이에이치큐,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 올리브나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 팬텀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비오에프, 예당엔터테인먼트, 웰메이드스타엠, 나무액터스 등이다. 이들 기획사는 지난해 매출액 합계가 3천억원에 육박하는 대형 업체로, 국내 연예기획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공정위는 추정했다. 공정위 시정조처에 따라 해당 연예기획사들은 소속 연예인들과 협의를 거쳐 문제되는 조항들을 고쳐야 한다. 공정위의 김윤수 서비스업경쟁과장은 “기획사들과 불리한 전속계약서를 맺는 연예인은 신인급이 많았지만, 유명 연예인들도 꼭 예외는 아니었다”며 “이번에 시정조처를 내린 기획사 소속 연예인 354명 가운데 지금까지 204명이 새로운 전속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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