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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파리야, 난 떨고 있는 게 아냐” / 백기완

등록 2008-12-11 18:36

1979년 박정희 저격사건 이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세력에게 체포당한 필자는 이듬해 5월 풀려나기까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구속 직전 80킬로그램의 당당했던 몸(왼쪽)이 석방됐을 때 50킬로그램대로 야위었다. 90년 평화대행진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에 쓰러지는(오른쪽) 등 내내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다.
1979년 박정희 저격사건 이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세력에게 체포당한 필자는 이듬해 5월 풀려나기까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구속 직전 80킬로그램의 당당했던 몸(왼쪽)이 석방됐을 때 50킬로그램대로 야위었다. 90년 평화대행진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에 쓰러지는(오른쪽) 등 내내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다.
백기완-나의 한살매 50
박정희가 숨을 거두었다고 벅적였다.(1979해 10달) 그런데 어라? 나를 잡아다 종로서 가둠(유치장)에 철커덩. 박정희도 갔는데 날 또 잡아넣어 …, 백낙청 교수가 오래 갇혔었다는 바로 그 가둠에서 한 보름 소릴 질렀다.

어쨌든 저녁엔 나갈 참이다. 그런데 구속자가족협의회의 공덕귀, 김한림 아님(여사)이 와서 귀띔을 해 준다. “오늘 저녁(11달24날) 명동 기독교여자청년회관(YWCA)에서 모임이 있을 거”라고. 처음 듣는 말이지만 나는 가둠에서 나오자 곧 명동으로 갔다.

박용길 아님, 백낙청 교수, 한동학, 이신범, 송재덕, 임정남, 이석표, 그밖에 여럿이 함께 갔다. 이른바 혼례잔치를 맹(거짓) 꾸린 ‘YWCA 위장결혼모임’이었다. 사람들 틈에 앉았다. 이우회가 “선생님, 오늘 불기(선언문)를 읽어주셔야겠습니다.” “그래? 근데 가둠에서 나오는 길이라 돋보기가 없구먼.”

맹(가짜) 새내기(신랑) 홍성엽이 들어오고 박종태 선생이 길눈이(주례)를 보려는데 비알들락(유리창)이 와장창, 양아치 여러 백이 날아든다. 이에 우리 젊은이들이 맞붙었다. 나도 “이놈들!” 하고 웃통을 벗으려다가 밀리고 공 아님이 “백 선생, 저놈들 저거 어떤 놈들입니까?” “글쎄요.” 이때부터 나한텐 세 가지 ‘까리’(알지 못할 일)가 다가왔다.

첫째, 그 북새 속에서 “백기완이 저놈 잡으라”는 소리였다. “뭐야, 이 새끼야?” 하고 소릴 질렀지만 나를 따라붙는 기자들과 사람 물살에 명동성당까지 밀렸다. 마침 빌린거(택시)가 있어 잡아타고 언애(동생)네 집에서 돈 오만 원을 얻은 다음 집에다 말통(전화)을 걸었다. 박정희가 죽었는데도 웬 놈들이 구둣발로 우리 안눌데(안방)와 일매기(사무실)까지 마구 짓밟고 갔다고 한다. “그래?”

둘째로 알 수 없는 ‘까리’는 그때 고은 시인이 때속(감옥)에 있어 차라리 낫지 싶어 그의 집엘 갔다가 중부경찰서로 끌려갔을 적이다. 정보과장이 나를 끌고 가려고 온 사람들한테 “백기완이 이 새끼 이거 악질입니다.” 그러고, 낯익은 손 형사도 “백기완이 넌 이제 죽었어.” 그러자 웬 녀석이 쇠붙이로 내 뒤통수를 갈기는 것이었다. 넋살을 잃었다가 질질 끌려가며 생각했다. 나는 중부서 둘레에 사는 사람, 그래서 겉으로는 안 그랬는데 왜 죽일 놈이라고 하며 넘겼을까.

셋째, 내가 끌려간 곳은 전두환의 서빙고 뼉빼(도살장), 들어서자마자 군인들이 갈긴다. 옷 벗으라고 치고, 느리게 벗는다고 치고, 아랫도릴 안 벗어도 치고, 벗었다고 치고. 홀랑 벗긴 다음 푸른 옷을 입히더니 컴컴한 데로 개 끌고 가듯 끌고 간다. 거기서 치는데 어딜 어떻게 맞았는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까리’는 뭘 묻고 캐는 게 없는 듯했다. “눌렀어?” 그러는 것 같은데 넓적다리에서 손바닥만한 살조박이 떨어졌다. “내려?” 그러는 것 같은데 구둣발로 차 내 배알이 불부등으로 빠지는 소리, 우적우적.

밤인가 싶었다. 어디서 사람 패는 소리, 아그그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누굴 죽이는 소리일까.

철컹, 열리더니 대뜸 손톱을 뺀다. 떨어진 손톱은 파르르, 피는 쭈악, 까무러쳤다. 깨어나니 “꺾어” 그러자마자 내 발뒤꿈치를 내 코앞으로 돌린다. 찌지직. “뻐게, 다시는 걷지도 서지도 못하게.” 또 까무러쳤다.

백기완
백기완
깨어나니 시커메진 두 무릎이 수박통만하게 부어 있다. 너무나 들쑤셔 “이봐, 매보다 부은 무릎이 더 쑤셔, 아스피린이라도 한 알 주고 때리면 안 돼?” “이 새끼야, 여기가 쓸풀(약)이나 주는 덴 줄 알아?” 내 발등을 이따위 몽뎅이로 쿵쿵, 썩은 살구나무처럼 됐다. 넋살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내 혓바닥에 쇳덩어리 같은 게 물려 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날보고 “네가 말을 잘 한다면서? 이제 틀렸어 이 새끼야. 아랫도리나 벗어, 냄새 나 이 새끼야.” 내 속옷이라는 게 피똥으로 뒤범벅, 손톱 빠진 내 손가락엔 어느새 골무가 끼어 있다. 나는 그 골무를 빼 내 속옷 똥 속에 쑤셔 넣었다. 이 다음 얼추(혹) 아내가 보라고. 그러고 나서 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왱왱 소리에 깨었다. 그 추운 겨울 파리 한 놈이 찾아온 것이다. 고칠네(의사)도 아니고, 예수·부처가 온 것도 아니고 파리새끼, 너무나 반가워 나는 수작을 걸었다.

“야 파리야, 내 꼴이 우습지. 하지만 난 떨고 있는 게 아니야. 지난 날 삶의 바투(현장)에서 찬바람 가르던 이 주먹 보여? 앙갚음의 주먹이 떨고 있는 거야. 그걸 네가 살아서 밖으로 나가게 되거든 사람들한테 말해줄래? 목숨이라곤 너밖에 없어서 그래.” 그 때 그 사람 뼉치(백정) 전두환은 갈마(역사)의 이름으로 보내야 했다. 그런데 누가 풀어주었는가. 갈마여, 말하라! 나는 요즈음도 묻고 있다.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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