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기일 잡지 못해 올해안 어렵다’ 관측
전원합의체 회부 미루는 이유도 궁금증
전원합의체 회부 미루는 이유도 궁금증
이건희(66) 전 회장 등이 기소된 ‘삼성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내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2000년 6월 법학 교수들의 집단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에 대한 최고법원의 판단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와 함께, 대법원의 판단 과정이 진통을 겪는 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21일 대법원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이 전 회장의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특별검사법이 정한 상고심 기한(2개월)이 지난 10일로 이미 지나감에 따라 연내 선고를 목표로 집중적으로 심리를 진행해 왔다. 이 전 회장의 주요 혐의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으로 따로 기소된 허태학(64)·박노빈(62)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의 상고심 재판부인 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도 결론 도출에 주력해 왔다. 두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주요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은 이 전 회장과, 반대로 유죄가 선고된 허태학·박노빈씨 사건을 함께 논의하며 조율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특검과 검찰로부터 상고이유 보충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주 말까지 선고기일을 잡지 못해 연내 선고가 물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기 선고기일에만 선고하라는 법은 없으며, 특별기일을 잡을 수도 있다”며 연내 선고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놨다. 그러나 대법관들이 10여일 동안 연일 논의했는데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 당장 선고기일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재판부 주변에서는 대법관들 사이의 의견 대립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내비쳤다. ‘삼성사건’은 안팎의 관심이 큰데다 배임죄의 인정 범위와 관련해 다른 사건에 끼칠 영향도 크기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허태학·박노빈씨를 변호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전 회장의 항소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 대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몰아주기에 대해 ‘제3자 배정이더라도 회사에 손실이 없어 죄가 안 된다’며 기존 판례를 거스르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와 다른 취지로 선고하려면 모든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부쳐야 한다. 그러면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장이 변호사 때의 ‘전력’ 때문에 빠져야 한다. 대법원은 이유를 밝히지는 않으면서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보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1·2부에는 이미 대법관 8명이 참여하고 있고, 안대희 대법관도 검찰 재직 때 허태학·박노빈씨 기소에 관여했기 때문에 그까지 제외하면 대법관 3명만 더 참여시켜 전원합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대법원 안팎에서는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으면 불씨를 남겨두는 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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