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경찰의 농성 진압작전 과정에서 철거민과 경찰 6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변 5층 건물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검게 그을린 건물 외벽과 위태롭게 매달린 부서진 유리조각들이 사건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증언하고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뒤 사건 현장에서는 전경 500여명이 건물을 봉쇄한 채, 현장 감식차 투입된 과학수사반원들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재개발지구 세입자들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등 30여명은 “내 가족 돌려내라. 시체를 찾아내라”고 울부짖으며 건물 진입을 시도하다 앞을 막아선 전경들과 잇따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2명이 실신해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건물을 둘러싼 시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강2동에 살고 있다는 손아무개(75)씨는 “한국이 고속도로 역주행을 하듯 20년은 후퇴한 것 같다”며 “내 가족이 피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용산 전자상가에 왔다 사고 현장을 찾은 맹아무개(30)씨는 “촛불집회 뒤로 경찰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은 정말 참담하다”며 “목숨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건물 앞에는 시민들이 놓아둔 흰국화 80여 송이가 놓여 있었으며, 한 스님은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염불을 하기도 했다.
이날 사고 직후 가장 많은 부상자가 옮겨진 용산 중앙대병원 응급실 입구에는 농성자와 전국철거민연합 관계자 8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차가운 복도에 주저앉아 대책을 논의하거나,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멍하게 허공만 바라봤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농성을 했는데, 언론에서는 마치 우리가 폭력배라도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낮 11시30분께 이 병원 응급실을 찾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5분 정도 부상자를 둘러본 뒤 굳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이날 중상을 입은 이충연(37)씨의 부인 정아무개씨는 농성현장에서 실종된 시아버지 이상민(71)씨를 찾아달라며 눈물을 흘려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정씨는 “농성 현장에 남편과 함께 있던 시아버지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근처에 있는 병원을 전부 돌았는데, 연세도 많으신 분이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 5월 결혼해 부모와 함께 장사를 하며 살아 왔으며, 최근 용산4구역 재개발로 살고 있던 집이 철거돼, 사고가 난 건물 옥상 옥탑방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아무개(47)씨 등 농성자 4명이 치료를 받고 있는 순천향대병원에서도 소식을 듣고 도착한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부상자를 돌봤다. 팔과 얼굴에 화상을 입은 김씨의 가족들은 기자들에게 “피곤에 지친 환자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잠에서 깨어난 김씨는 “경찰이 컨테이너를 망루에 충돌시키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과 검은 연기가 올라와 당황한 사람들이 뛰어내렸다”며 “안전조치조차 하지 않고 진압을 한 경찰은 농성하던 사람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등 국회의원 10여명이 진상 조사차 방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오후 4시30분께 사고 현장을 찾았지만, 주위에 있던 시민들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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