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
수압 규정없는 물대포 운용지침 등
구체적 기준 없고 내용도 원칙론뿐 경찰이 각종 집회·시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 시행 중인 매뉴얼(내부수칙)이 알맹이 없는 원칙론에 머물러 실제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8월 일선에 배포한 ‘집회·시위 현장 법집행 매뉴얼’에는 집회·시위의 기본 관리방침과 해산·체포 절차, 유형별 적용 법규 등이 담겨 있다. 경찰은 “지난 2001년 처음으로 내부수칙을 만들었으며, 현실 변화에 따라 내용을 갱신해 현장 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뉴얼 내용을 뜯어보면 구체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한 ‘차벽’(차량들을 이용한 차단시설)의 경우, “차벽 운용 시간을 최소화해 시민 불편을 고려할 것”이라고 돼 있으나, 차벽을 설치·철거하는 구체적 기준은 나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차벽 활용 방식이 곧잘 남용되고 있다. ‘물대포 운용지침’도 “물살 세기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 안전하게 사용할 것”이란 원칙적인 안전기준이 있을 뿐 직접적인 수압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경비담당 책임자는 “기동대마다 매뉴얼이 배포돼 있긴 하지만, 원칙론만 있지 ‘이럴 땐 이렇게 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아니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선에선 이런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기동대 소속 강아무개(24)씨는 “가끔 인권교육 같은 걸 하기는 하지만, 매뉴얼이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매뉴얼은 특히 집회·시위에 대해 모순적인 서술 양태도 보이고 있다. 집회·시위 안전관리 수칙으로 “시위대는 적이 아니므로 적대감을 갖거나 가해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원론적으로 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2003~2007년 5년 동안) 연평균 1만1297건의 집회·시위가 발생해 국가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적는 등 시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노출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모든 집회가 합법일 경우에도 6조9671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드는 것으로 산출해 놓아, 시민의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에 대해서도 왜곡된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석대 김상균 교수(경찰학)는 “매뉴얼에 정해진 내용조차 지켜지지 않는 근저에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경찰 문화가 놓여 있다”며 “성급한 진압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갖춰나가야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구체적 기준 없고 내용도 원칙론뿐 경찰이 각종 집회·시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 시행 중인 매뉴얼(내부수칙)이 알맹이 없는 원칙론에 머물러 실제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8월 일선에 배포한 ‘집회·시위 현장 법집행 매뉴얼’에는 집회·시위의 기본 관리방침과 해산·체포 절차, 유형별 적용 법규 등이 담겨 있다. 경찰은 “지난 2001년 처음으로 내부수칙을 만들었으며, 현실 변화에 따라 내용을 갱신해 현장 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뉴얼 내용을 뜯어보면 구체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한 ‘차벽’(차량들을 이용한 차단시설)의 경우, “차벽 운용 시간을 최소화해 시민 불편을 고려할 것”이라고 돼 있으나, 차벽을 설치·철거하는 구체적 기준은 나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차벽 활용 방식이 곧잘 남용되고 있다. ‘물대포 운용지침’도 “물살 세기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 안전하게 사용할 것”이란 원칙적인 안전기준이 있을 뿐 직접적인 수압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경비담당 책임자는 “기동대마다 매뉴얼이 배포돼 있긴 하지만, 원칙론만 있지 ‘이럴 땐 이렇게 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아니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선에선 이런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기동대 소속 강아무개(24)씨는 “가끔 인권교육 같은 걸 하기는 하지만, 매뉴얼이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매뉴얼은 특히 집회·시위에 대해 모순적인 서술 양태도 보이고 있다. 집회·시위 안전관리 수칙으로 “시위대는 적이 아니므로 적대감을 갖거나 가해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원론적으로 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2003~2007년 5년 동안) 연평균 1만1297건의 집회·시위가 발생해 국가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적는 등 시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노출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모든 집회가 합법일 경우에도 6조9671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드는 것으로 산출해 놓아, 시민의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에 대해서도 왜곡된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석대 김상균 교수(경찰학)는 “매뉴얼에 정해진 내용조차 지켜지지 않는 근저에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경찰 문화가 놓여 있다”며 “성급한 진압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갖춰나가야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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