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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개발에 떠밀리 ‘철거 유목민’

등록 2009-02-04 13:44

달동네 전전하다 비닐하우스촌으로…“더 밀려나면 노숙”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경마공원 앞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에 살고 있는 이춘숙(52)씨의 지난 20여년은 재개발과 철거 투쟁으로 이어진 이주민의 삶이었다. 마음 편히 살 곳을 찾아 도시 주변부를 전전한 그의 여정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1986년 시작됐다.

이씨는 1980년 결혼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사당2동 달동네 집에서 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일용직 노동자나 택시 운전사들이었다. ‘재개발’, ‘철거’ 같은 흉흉한 소문이 나돌더니 1986년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서울 이곳저곳에서 ‘도시정비’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씨는 철거반대 투쟁에 합류했고, 결국 1989년 이주비 한푼 지원받지 못하던 무등록자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사당2동을 떠날 수 있었다. 고정적인 수입 없이 긴 싸움을 벌이며, “까먹는 건 돈이었고, 지나가는 건 시간이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 이씨는 멀지 않은 관악구 봉천동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봉천동에서도 재개발 이야기가 들려왔다. 봉천동에는 사당2동, 사당4동에서 밀려온 이주민이 많았고, 이들은 곧바로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천막도 치고, 농성도 하며 4년여를 버티고 버텼지만, 이씨는 93년 관악구 신림동으로 또 집을 옮겨야 했다. 이번에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 그는 “그나마 가지고 있는 돈이 줄어 월세만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신림동에서도 그는 다시 재개발 등살에 밀려나야 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모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결국 이씨는 97년 경기도 과천시 비닐하우스 주거촌인 꿀벌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시어머니과 딸을 포함한 네 식구가 이곳에서 지낸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이곳 정착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2004년에는 옆집에서 전기누전으로 난 불에 집이 몽땅 타 새로 비닐하우스를 짓기도 했다. 이씨는 “지금은 일단 얼기설기 올려놓은 상태라 방이라고 하기도 좀 어렵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씨는 그래도 자기 사정은 좀 낫다고 했다. “꿀벌마을은 98% 정도가 사유지라서 거주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땅주인과 토지 명도 소송을 진행 중”이며, “연세 많으신 노인 분들은 정말 이곳에서 밀려나면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가 지천이었던 이곳은 이제 3.3㎡(1평)당 150여만원을 호가한다. “우리 집도 사실 강제집행이 들어왔었는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거에요. 3월 되면 날도 풀리니까 한번 또 (집행이) 들어오겠죠.” 그는 “80년대에도 살았고, 90년대에도 살았으니, 2000년대에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직장인 택시 회사로 향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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