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환(74)
순국 80여년 만에 유서 공개된 이명우·권성 부부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만사가 창황하고 조각마음 화살과 같고 백계에 방법없네.”(이명우)
“너 어르신께옵서 평생에 의리 가득하시와 이제 뜻과 같이 이루실 듯 하시니 나도 같이 따르리라.“(권성)
일제 맞서 부부 자결한 유일 사례
분통·충의 간곡…“국문학적 가치도” 경북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25일 일제에게 나라를 잃은 것을 비통히 여겨 순국한 안동 선비 부부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를 공개했다. 1920년 순국한 성재 이명우(1872∼1920)와 그의 부인 권성(1868∼1920)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는 상을 치른 뒤 후손들이 성재 선생의 글을 옮겨 적은 <성재옹 유고> 안에 들어 있으며, 별도의 두루마리도 남아 있다. 안동 예안면 부포 마을에서 퇴계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명우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문을 닫고 칩거에 들어갔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목숨을 끊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려는 뜻을 세웠으나, 아직 부모가 살아 있어 그 뜻을 잠시 접었다. 18년 10월 모친상에 이어 12월 고종의 사망 소식을 접한 그는 서쪽을 향해 아침 저녁으로 통곡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20년 음력 12월20일 저녁 이들 부부는 자식들을 물리치고 독약을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남긴 글에는 나라를 잃고 10여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인 권성은 남편을 따라가며 네 통의 유서를 남겼다. 아들 삼형제와 두 며느리 등에게 남긴 유서에는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과 함께 가겠다는 간곡함이 담겨 있다. 이 유서들은 후손 이일환(74·사진)씨가 보관하고 있던 선생의 유품에서 최근 발견됐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나라를 잃고 부부가 함께 자결순국한 유일한 사례”라며 “특히 권성은 일제강점기 자결 순국한 유일한 여성으로 그의 유서는 국문학적 가치도 있다”고 밝혔다. 안동/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분통·충의 간곡…“국문학적 가치도” 경북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25일 일제에게 나라를 잃은 것을 비통히 여겨 순국한 안동 선비 부부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를 공개했다. 1920년 순국한 성재 이명우(1872∼1920)와 그의 부인 권성(1868∼1920)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는 상을 치른 뒤 후손들이 성재 선생의 글을 옮겨 적은 <성재옹 유고> 안에 들어 있으며, 별도의 두루마리도 남아 있다. 안동 예안면 부포 마을에서 퇴계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명우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문을 닫고 칩거에 들어갔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목숨을 끊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려는 뜻을 세웠으나, 아직 부모가 살아 있어 그 뜻을 잠시 접었다. 18년 10월 모친상에 이어 12월 고종의 사망 소식을 접한 그는 서쪽을 향해 아침 저녁으로 통곡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20년 음력 12월20일 저녁 이들 부부는 자식들을 물리치고 독약을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남긴 글에는 나라를 잃고 10여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인 권성은 남편을 따라가며 네 통의 유서를 남겼다. 아들 삼형제와 두 며느리 등에게 남긴 유서에는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과 함께 가겠다는 간곡함이 담겨 있다. 이 유서들은 후손 이일환(74·사진)씨가 보관하고 있던 선생의 유품에서 최근 발견됐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나라를 잃고 부부가 함께 자결순국한 유일한 사례”라며 “특히 권성은 일제강점기 자결 순국한 유일한 여성으로 그의 유서는 국문학적 가치도 있다”고 밝혔다. 안동/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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