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 무죄 선고한 판사에 전화로 이유 묻고
다른 시국사건 판사에 메일…위헌신청 기각 주문도
다른 시국사건 판사에 메일…위헌신청 기각 주문도
“소문이 하나둘씩 사실로 확인되다 보니, 이젠 내가 들었던 말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모르겠다. 진상을 밝혀야겠지만, 법원을 위해서는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했던 한 판사가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 사건을 지켜보며 9일 털어놓은 심정이다. 그는 “촛불 재판에 관여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자고 나면 새로 불거지는 의혹이 새로운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들었던 내용들이라 더 곤혹스럽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제기돼 온 의혹들이 이미 일부 판사들 사이에선 논의되거나 최소한 알려진 것들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하듯 촛불 관련 사건의 몰아주기 배당과 양형이나 영장 기각 사유 변경 압력 의혹, 전자우편을 통한 재판 간섭 등 이미 대법원이 조사중인 사안 외에도, 지난 주말 다른 내용의 의혹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위헌심판 제청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과, ‘국가보안법 등 시국사건 담당 판사에게 개별 전자우편을 보내고 전화도 걸었다’는 내용이다. 둘 다 당시 판사들의 증언을 통해서 언론에 알려졌다. 두 사건 모두 ‘촛불 배당’처럼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현재 진상조사를 진행중인 대법원 조사단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의혹들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로 불거진 의혹의 내용을 보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은 “작년 8월 신 대법관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우리 법원에 위헌신청이 들어왔다면서요. 우리 법원에 들어온 사건인데 다른 기관(헌법재판소)에 옮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신 대법관의 발언은 ‘촛불시위 중 여대생 강간설’을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된 김아무개씨가 재판부에 해당 법률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을 신청한 직후였다. 그 전날에는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신청도 접수돼 검토가 진행중이었다.
이와 함께 신 대법관이 다른 시국관련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개별 전자우편을 보낸 사실도 대법원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 지난 1월에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전교조 교사 2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무죄 이유를 물어봤다는 담당 판사의 증언도 나왔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들 가운데 일부는 “알려지지 않은 시국사건 가운데 배당이 이상하게 결정된 사건이 더 있었다”며 다른 의혹들이 불거질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주요 시국사건에 대한 신 대법관의 전방위적인 ‘관심’과 ‘개입’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그가 대법관 지명을 앞두고 무리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법원 외부에서 상당한 부담을 주지 않고서야 그토록 집요하게 메일을 보낼 수 있었겠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