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개업손님이 몰려야 하는 서울 황학동 주방기기 가게거리가 경기침체로 찾는 손님이 뜸해 한산하기만 하다. 9일 오후 중고 물품이 가득 쌍인 채 개업한다며 찾는 손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채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폐업식당 주방기기 잔뜩 쌓였는데 구매 ‘뚝’
“외환위기 땐 창업도 많았는데” 상인 한숨
“외환위기 땐 창업도 많았는데” 상인 한숨
“폐업 상담 전화는 많이 들어오는데 물건은 안 나가네요.”
9일 오전 중고 주방기기 전문매매상이 모여 있는 서울 중구 황학동 거리. 가게 앞에 쌓여 있는 중고 주방기기들 사이에 앉아 있던 ㄷ종합주방 사장 이창배(44)씨는 “요즘이 창업 시즌인데 너무 매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부터 폐업처리 건수가 평소보다 30%가량 늘어 중고 주방기기들이 가게마다 잔뜩 쌓여 있다. 이씨는 “경기가 어려워 그런지 요즘은 작은 식당뿐만 아니라 골프장 식당 같은 큰 곳에서도 폐업 상담이 많다”고 말했다.
일당을 받고 폐업집 물건을 받아오는 용달업자 조인규(57)씨는 “며칠 전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의자와 탁자 30개를 40만원 주고 가져왔는데 가게가 너무 안 돼서 정리한다 하더라”며 “3월이면 물건이 나갈 철인데 요즘은 여전히 폐업이 많다”고 말했다. 같은 일을 하는 조동화(63)씨는 “오전에 한 백화점 식당가에서 분식집 주방설비를 철거하고 왔다”며 “70대 할아버지가 사장이던데 ‘가게 차리고 오히려 2천만원을 날려 아예 접는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ㅁ상회 사장 남궁정건(71)씨는 “예전에는 일이 몰릴 때 하루 2~3건 했다면 요즘은 5~6건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수자들의 발길은 아주 드물다. 그릇가게 주인들은 두리번거리는 행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튀어나가 “뭐 필요하냐”며 눈을 맞추며 ‘호객’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이날 중고 건조기를 사러 온 김아무개(45)씨는 한 가게에 들러 “이건 얼마예요? 하나에 10만원?” 하며 가격을 흥정하다 “너무 비싸다”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고시장 주인들은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이 줄어 한달 매출이 20%가량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전인택(53)씨는 “외환위기 때는 폐업하는 가게도 많았지만 그만큼 새로 시작하는 사람도 많아 정신없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새로 식당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대목’을 준비하는 가게 주인들의 손놀림도 맥이 빠졌다. 중고 설거지대에 낀 녹을 철수세미로 부지런히 닦아내던 김아무개(65)씨는 “봄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데 영 신이 나지 않는다”며 “평소 같으면 손님들이 한참 붐빌 철인데 소매조차 뜸하다”고 말했다. ㅁ종합주방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8)씨는 “폐업한 식당에서 설거지대를 5만원 주고 사왔는데 몇 달째 나가질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이곳을 찾는 사람 가운데는 ‘아무리 불황이라지만 그래도 먹는 장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90만원을 투자해 16평짜리 칼국수 가게를 준비하고 있다는 전아무개(49)씨는 “경기가 너무 어려워 걱정되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번 부닥쳐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경화 이승준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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