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취한 프랑스 군대는 과거의 방식에 연연한 마지노 요새만을 최후의 보류로 믿고 있었다. 과거의 혁혁한 전과에 취하여 도취경에서 깨어나지 못한 프랑스의 노 장군들에게는 군대의 기계화와 세상의 변천과 기술의 진보는 알 필요조차 없는 허무맹랑한 일 이였다. 그들에게 있어 비행기는 스포츠에 불과하고 군대의 기계화는 신중해야 할 사안이었으며 다음의 전쟁도 공중전 따위는 있을 수 없고 오직 과거의 철통같은 수비와 지상전만이 있을 뿐이라며 과거의 영광과 방식에 틀어박혀 있었다. 드디어 싸움이 벌어진 날, 독일군은 80명의 군사로 단 30분 만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점령하고 말았다.
율곡이 ‘10만 양병론’을 들고 나왔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반대이유는 간헐적인 오랑캐 침범은 있었지만 10만 대군을 키워야 할 만큼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유성룡은 ‘양호유환(養虎遺患)’, 즉 평화 시에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반대한 유성룡은 동인이었다. 서인과 동인이 치열하게 당쟁을 벌이면서 국익을 위한 사려 깊은 분석은 옳고 그름을 떠나 당략 앞에 뒷전에 밀릴 뿐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와 자기가 쌓아온 업적을 지키려는 본능이 과거의 경험을 최고로 여기게 만들고 그 안에 도피하게 만든다. 자신과는 반대되는 타인의 생각은 자신을 적대하는 악인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독선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생각이 끝내는 그런 역사적 비극을 만들었다 생각한다.
요즘 한국사회의 일부 극보수세력의 논리가 걱정스럽다 못해 한심하게 보인다. 강대국의 보호아래 누렸던 고도성장의 영광에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지 사대주의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느낌마저 든다.
99개 가진 부자가 1개가진 이의 것을 탐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자신의 자존심마저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는 끝내는 외세의 침략 준비에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논리일 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99개 가진 부자가 1개가진 이의 것을 탐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자신의 자존심마저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는 끝내는 외세의 침략 준비에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논리일 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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