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사건 일지
[촛불재판 개입 확인]
재판 미루려던 판사가 이메일 받고 진행
‘불리한 작용’ 의혹들 사실관계 설명없어
재판 미루려던 판사가 이메일 받고 진행
‘불리한 작용’ 의혹들 사실관계 설명없어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이 실제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만한 사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 안팎에는 다른 평가가 많다. 촛불사건 ‘코드 배당’이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 위헌제청 등을 둘러싼 신 대법관의 ‘몰아가기’가 결국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선 서울중앙지법이 촛불사건 접수 초기에 특정 재판부에 8건을 집중해서 보낸 것 자체가 재판 결과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다는 지적을 낳는다. 촛불사건을 몰아서 배당받은 판사는 상대적으로 시국사건에서 엄한 판결 경향을 보였다는 게 법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당시 서울지법의 판사들이 촛불사건 처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해당 재판부는 촛불집회를 이끈 혐의로 기소된 윤희숙(32)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가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며 판단까지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촛불사건을 한 재판부에 몰아준 이유를 “양형 통일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해당 재판부의 판결문과 이런 설명을 덧붙이면, 결국 서울지법의 사건 몰아주기는 다른 피고인들로부터 위헌 시비를 차단하면서 사건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려는 의도로 생각할 수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한 한 판사는 “배당권자가 아무런 생각 없이 특정 재판부에 사건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은 전자우편 등을 통한 압력이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그러나 촛불집회 참가자 김아무개(37)씨 변호인은 “지난 6일 애초 위헌제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미룰 생각이었던 판사가 신 대법관의 전자우편을 받고 다시 재판을 진행했다”며 “신 대법관의 압력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단은 이 판사가 어떻게 설명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조사단은 또 지난해 8월께 신 대법관이 판사들을 불러 ‘전기통신기본법 위헌제청을 기각하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개인적 의견표명 수준을 넘는 재판 관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한 판사는 “위헌제청을 하지 말라는 취지”였다고 밝힌 바 있고, “신 대법관의 말에 압력을 느껴 위헌제청 신청을 기각했다”는 증언도 일부 언론을 통해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조사단은 ‘위헌제청을 자제하라’거나 선고유예를 만류하고 벌금 판결을 유도하는 발언 등에 대해서는 ‘재판 관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법원장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판사는 물론 제3자 시각에서도 명백히 재판에 대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단은 이런 행위들이 재판 관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까지 부인하게 된 셈이다.
어쨌든 재판영향에 대한 조사단의 결론은 조사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자초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이 공정한 재판을 방해했다고 인정할 경우 ‘재판 불복’ 사태가 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