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16일 오후 대법원 현관 앞에서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 조사발표에 대한 입장을 묻는 보조진의 질의에 굳게 입을 다문 채 퇴근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o@hani.co.kr
‘촛불재판’ 문제 알고도 사법부 불신 키워
상황판단 능력 미흡…일부선 ‘진의 믿자’
상황판단 능력 미흡…일부선 ‘진의 믿자’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번 파문과 관련해 책임질 일이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이 대법원장의 위치나,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점 등을 보면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이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촛불사건 배당 문제와 관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의 문제제기를 당시에 알고 있었다는 점이 책임론의 출발점이다. 조기에 문제를 해결했더라면 심각한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수뇌부 연대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신 대법관이 지난해 7월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배당 방식 개선을 약속한 뒤에도 상당수의 촛불사건이 임의배당 방식으로 배분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10월14일 신 대법관이 이 대법원장에게 촛불사건 위헌제청에 관해 보고한 시점의 직전·직후 판사들에게 촛불사건 피고인의 보석을 자제하라는 취지로 말하거나, 조속한 재판 진행을 촉구한 것도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진상조사단은 이 대법원장이 위헌 의견을 지닌 판사들은 재판 진행을 중단해야 하고, 합헌 의견을 지닌 판사들은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신 대법관이 이를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판사들은 무조건 재판을 진행하라’는 게 대법원장의 뜻이라고 왜곡해 전달했다는 게 조사단의 설명이다.
대법원장이 일선에서 벌어지는 일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지만, 신 대법관이 계속 부적절한 행태를 보이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를 대법관 후보로 대통령한테 제청한 것은 이 대법원장의 상황 파악 능력과 판단력에 의구심을 던지게 만든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이 대법원장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쪽에서 연대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법원장을 ‘이해’하려는 쪽에서는 대법원장의 ‘진의’를 믿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만약 결과가 신 대법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쪽이었다면 대법원장이 심각한 책임론에 휩싸였을 것”이라며 “조사도 비교적 제약없이 충분히 이뤄진 것 같고, 이후 사태 해결 방향도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것 없이 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판사는 “이 대법원장이 촛불사건 재판 당시 ‘젊은 판사들의 기를 꺾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결국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그 말의 진실성을 어느 정도는 보여준 게 아니냐”고 평가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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