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유명 건설회사 회장이고요, 명문여대를 나왔어요.”
ㄱ씨(여·37)는 지난 2002년 초 서울의 한 와인바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 ㄴ씨(38)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2명의 아이를 낳고 9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정리한 ㄱ씨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가족사항과 학력까지 속여가며 ㄱ씨에게 접근했다.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같은해 11월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 유명 건설회사 회장이라는 아버지 등 신부 쪽 가족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ㄱ씨는 “아버지와 싸우고 혼자 나와 살고 있어 그렇다”고 둘러댔다.
호화생활을 위해 빌려쓴 사채 갚기에 급급했던 ㄱ씨는 결혼 전부터 ㄴ씨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2002년 3월 “패스프푸드점을 인수한다”며 8천만원을 ㄴ씨 명의로 대출받은 것을 시작으로, 결혼 뒤에도 ‘사업자금’ ‘세무조사 무마 위한 국세청 로비자금’ 명목 등으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서 수천만~수억원대의 돈을 계속해서 가져갔다. 지난해 7월에는 “당신 부정행위가 담긴 몰카를 갖고 있다”며 남편을 협박해 1억500만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ㄱ씨가 2년여 동안 64차례에 걸쳐 챙긴 돈은 모두 80억원에 이른다.
ㄱ씨는 17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손기호)에 의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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