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에 대한 수사가 벌어지고 있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23일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친 검찰 직원들이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현직 검찰간부 6~7명 ‘입길’ 올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한편으로 검찰 역시 곤혹스런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 회장의 로비 대상으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부산·경남 지역을 거쳐 간 검찰 고위 간부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의혹은 수사 초기단계부터 불거졌었고, 박 회장도 이와 관련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는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는 6~7명 선이다. 23일에는 지방의 한 현직 검사장이 박 회장한테서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박 회장과 빈번한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됐고, 이 때문에 지난 1월 검사장급 인사에서 좌천성 인사를 당하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 관련 부분도) 한 점 의혹 없이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검찰이 과거와 달리 엄정하게 ‘제식구 처벌’에 나설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접대를 하거나 ‘떡값’을 줬다는 박 회장의 진술이 나오더라도,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박 회장이 상당수의 검찰 간부에게도 공을 들였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증언도 있다. 지난 정권에서 부산·경남 지역에서 검사장을 지냈던 한 전직 검찰 간부는 “박 회장이 나를 접촉하려고 해서 거절했더니, 행정기관 기관장을 통해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데 왜 그러냐’는 식으로 말이 들어오더라”면서 “박 회장이 노건평씨와 함께 부산·경남 지역 기관장들을 서로 소개하고 만나는 등 활발한 접촉을 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박 회장이 한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를 내세워 ‘위세’를 과시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수사에서는 박 회장이 노씨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에게 돈을 전달한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일부 검찰 간부들은 박 회장의 재력과 노씨의 ‘권력’이 지닌 무게를 외면하기 어려워 이들과 접촉해 온 것으로 보인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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