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거물’들 이름이 한둘씩 추가되는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정치권이 초긴장하고 있다. 2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이자 핵심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 변호사의 실명까지 언론에 등장했다. 여권의 한 유력 인사는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냐”며 걱정했다. 여권 실세들도 놀라는 검찰의 ‘광폭 수사’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대해 표면적으로 “검찰이 알아서 하는 일로, 우리로서도 검찰 수사를 지켜볼 뿐”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핵폭탄급 충격파를 가져올 이번 수사는 최소한 이 대통령의 뜻과 상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청와대와 치밀하게 조율된 것 같진 않지만, 드러난 것들을 덮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에 앞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됐을 때부터 이 대통령은 어느 정도 파장을 감수할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 대통령의 한 측근 의원이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7월 시작된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는 당시 정치 재개 움직임을 보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박 회장을 건드리면 여권에도 파장이 미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한 이명박계 의원은 “이 대통령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며 “이번 수사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법무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때 “현 정부는 도덕적 약점 없이 출발한 만큼 법을 엄정히 집행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권 안에서 “이번 일을 정치권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 대통령은 이번 수사에서 아쉬울 게 없고, 자신감이 있는 듯 하다”며 “이번 수사가 여권 내부 물갈이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평소 “부정한 돈을 받은 적 없다”고 말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이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이름까지 수사 대상이 되는 상황을 두고는 또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이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때면 청와대로 불러 격의없이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손발이 다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 사건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황준범 이유주현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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