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움도 외로움도 공과 함께 날려요”
14~16일 천안 등 충남 4개 도시에서 열린 2005 전국 생활체육동호인 대축전’에서 푸른 눈의 외국인 여자 배구선수가 코트를 누벼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전남 장흥군 ‘정남진’ 동호회 소속의 알레시아 토렌티노(35). 페루에서 태어난 그는 7년 전 원양어선을 타고 세계의 항구를 누비던 남편 박정선씨를 만나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현재 전남 장흥에서 시어머니와 시동생, 그리고 1남1녀의 자녀와 함께 농사일을 거들며 살고 있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 3년에 한번씩 입국하는 남편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체중도 많이 늘었다.
알레시아의 삶에 활력과 희망을 준 것은 하얀 배구공. 2년 전, 그가 사는 장흥에 9인제 배구동호회인 ‘정남진’ 팀이 생기자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 팀에는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의 주부 22명이 가입돼 활동하고 있다. 172㎝의 큰 키로 페루에서 학창시절 배구클럽에서 활동했던 그는 중앙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배구를 하면서 체중도 많이 줄고, 타국생활에 대한 외로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남진 동호회 동료들의 관심과 배려도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알레시아는 “동호회 활동 뒤 처음 맞이한 재작년 12월 생일 때는 동료들이 깜짝 파티를 열어줘 너무 기뻤다”면서 “동료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밝게 웃었다.
페루는 한국 배구와 큰 인연이 있는 나라. 박만복씨가 1980~90년대 페루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준우승하는 등 세계 정상급으로 이끌었다. 그는 “배구 때문에 한국을 알게 됐다”며 “한국에서 배구를 하게 돼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아직 서툰 알레시아는 현재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 ‘정남진’ 팀 김도순 감독은 “알레시아가 배구를 하면서 성격이 활달해졌다”며 “수준급의 실력으로 팀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칭찬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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