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강로 재개발 4구역 철거 예정 건물의 문 밖으로 인근 주상복합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김정효 <한겨레21> 기자 hyopd@hani.co.kr
346만원이 2년새 439만원…이자에 분담금 고통
내역문의에 “영업기밀” 조합 손놓고 건설사 배짱
내역문의에 “영업기밀” 조합 손놓고 건설사 배짱
서울 ‘ㄷ 4구역’ 재개발 지역 주민 김철우(33·가명)씨는 자신을 그저 “평범한 시민”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재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경북 출신인 그는 1995년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2년 마다 서울 곳곳을 ‘메뚜기’처럼 이사다니는 생활이 시작됐다. 2006년 결혼한 그는 “가족까지 생겼고, 이사가 너무 지겨워” 꼭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지난 몇 해 동안 집값은 미친 듯 뛰었고, 맞벌이 부부의 억척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2007년 겨울로 접어들던 무렵 그의 눈을 잡아 끄는 매물이 나왔다. 서울 지하철 ㄷ역 부근 ㄷ4구역(1만1958㎡)이었다. 그는 “유망한 재개발 지역의 지분을 사면 쉽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08년 1월 김씨는 은행 융자를 더해 3억4천만원을 주고 대지 18평짜리 허름한 단독주택을 샀다. 재개발 붐이 일기 전까지만 해도 평당(3.3㎡) 500만원이던 땅값은 1800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땅값 상승세는 공시지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김씨의 집터는 1999년 82만7천원에서 2008년 197만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그의 기대대로 이 지역은 2008년 8월 재개발 지구로 지정됐고, 한 달 뒤인 9월 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됐고, 매달 감당해야 하는 수십 만원의 ‘이자’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파트 입주를 위해 추가로 내야 하는 ‘분담금’이 됐다. 몇 번이나 조합에 찾아가 분담금을 문의했지만, 조합 쪽에서 돌아온 것은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 뿐이었다. 오기가 발동한 김씨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 재개발·재건축 관련 법규를 달달 외워가며 ‘재개발 박사’가 되어 갔다.
그가 보기에 재개발은 대형 건설회사의 배를 채우는 사업이었다. 모든 것이 시공사의 장난이었다. 이곳의 재개발을 맡은 ㄹ건설은 지난 2007년 재개발 추진위원회와 평당 건축비 346만원에 ‘가계약’를 맺었다. 법에는 조합이 설립된 뒤 경쟁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뽑게 돼 있지만 현실에선 사문화한 규정에 가깝다. 가계약을 맺으면 건설사는 조합에 운영자금를 빌려준다. 그러면서 조합 임원들에게 연대보증 책임을 지운다. 김씨는 “사업이 무산되면 조합 간부들이 빌려 쓴 돈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며 “돈에 물린 조합 간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건설사 편을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가 지나 올 1월로 접어들면서 조합 내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계약을 앞둔 건설사가 건축비로 가계약 때보다 90만원 더 높은 439만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건설사 쪽에 “상세 내역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건설사는 ‘영업기밀’이라며 거부했다. 정보가 공개되어도 대규모 건축공사에 문외한인 김씨가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김씨와 주민 대표들은 건설사 쪽과 7차례나 얼굴을 맞대고 분담금 인하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지만, 이견이 너무 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서울 응암·가재울 지역 등 다른 재개발 사업구역에서는 조합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조합 설립·시공사 선정·관리처분계획 취소 등의 소송을 내기도 하지만 별로 달갑진 않다. 그렇게 되면, 사업이 몇 년씩 중단되고 그 시간 동안 대출 이자를 꼬박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공동기획 : 한겨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기획 : 한겨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