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서남부지역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 안산/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법무부, 입법예고
‘범죄가능성=범인’ 단정
무죄추정원칙에 위배
“법원 판결뒤 합의 거쳐야”
‘범죄가능성=범인’ 단정
무죄추정원칙에 위배
“법원 판결뒤 합의 거쳐야”
법무부가 살인이나 아동 성폭력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얼굴을 법원의 ‘확정 판결’ 전에 공개하는 법안을 입법 예고해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24일 수사기관이 살인, 미성년자 유괴, 아동 성폭력 강간 등의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때 피의자의 얼굴 공개를 허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특강법)을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25일 별도 자료를 내어 “피의자 얼굴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에 대한 프라이버시권 사이에 어느 가치를 더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초상권 등은 알 권리 등 다른 기본권과 충돌할 경우 제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의 입법 예고안은 수사기관에 피의자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고 있는데다, 대상 범죄의 기준·범위 등이 모호해 남용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이어진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유죄를 증명해야 하는 수사기관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며 “공개를 한다 해도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견줘 2000년부터 시행중인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는 범죄자 인권보호를 위해 까다로운 공개 요건을 정해 두고 있다. 청소년 성범죄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의 부모나 일선 학교의 교장’ 등으로 한정되고, 그마저도 지역 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 직접 찾아가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정보 열람 청구’를 해야 한다. 이렇게 공개되는 정보는 확정 판결을 받은 범죄자의 이름·주소·얼굴사진 등이다. 정보는 컴퓨터 단말기에서 열람만 할 수 있고,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 형사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아동 성범죄는 한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충분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진된 것”이라며 “공개 방법과 범위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금씩 변해왔다”고 말했다.
섣부른 정보 공개가 당사자에게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06년 제주도에 사는 김아무개(당시 24살)씨는 살인·방화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경찰은 김씨의 범죄를 확신하고 수사과정에서 실명을 밝혀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김씨는 1년여의 재판 끝에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 “경찰의 일방적인 사건 브리핑으로 살인범이 됐다”며 “가족까지 심한 충격을 받았지만 누구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형사정책이나 법무행정은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며 “강호순 사건을 둘러싼 일부 언론의 상업적 판단에 국가기관이 부화뇌동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홍석재 송경화 정유경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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