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 작고 추적하기 어려워
정·관계 로비수단 자주 등장
50만원짜리 상품권도 눈길
정·관계 로비수단 자주 등장
50만원짜리 상품권도 눈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금품 살포 행태는 대상 인물들과 규모 면에서도 놀랍지만, 달러와 상품권에 현금이나 수표와 같은 로비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지난 26일 구속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미국과 베트남, 한국을 오가며 박 회장한테서 4차례에 걸쳐 12만달러와 2천만원을 건네받고,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한테서는 3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의원이 네 차례나 국내에서 달러를 받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검찰의 소환 대상인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미국에서 수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다.
달러 로비가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에스케이그룹 분식회계 사건 때부터다. 손영래 전 국세청장과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받은 금품에는 ‘여행 경비’ 명목의 달러가 각각 1만달러씩 포함돼 있었다. 박성범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06년 받은 케이크 상자에는 21만달러가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가끔 드러나던 달러 제공이 박 회장 사건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가 해외 사업을 주로 하며 의원들을 해외에서 만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00달러짜리 지폐는 1만원권보다 10배 이상의 가치를 지녀 눈에 띌 염려가 그만큼 적다. 해외에서 사용하면 추적을 피하기도 쉬워 새로운 금품 로비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박 회장이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1억원어치를 건넨 5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도 눈길을 끈다. 박 전 수석의 부인은 가방 등 고가품을 사는 데 상품권을 모두 쓴 것으로 알려졌다. 50만원짜리 상품권은 100달러보다도 부피가 훨씬 적다. 백화점업계 집계를 보면, 지난해 10만원 이상 고액 상품권의 매출은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10만원이나 50만원짜리 상품권을 묶은 1천만~3천만원짜리 상품권도 명절 때 인기리에 판매된다.
검찰 관계자는 “달러나 상품권은 받는 쪽에서 들킬 염려가 적고 현금보다 죄책감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10만원권 현금 발행이 추진됐을 때 우려했던 것도 부정한 금품 수수가 쉬워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송채경화 기자 mir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