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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풍산 류씨-의성 김씨 ‘400년 다툼’ 종지부

등록 2009-03-31 19:25수정 2009-03-31 22:18

서애 류성룡 영정(상상화).
서애 류성룡 영정(상상화).
호계서원 위패 서열 ‘좌 류성룡-우 김성일’ 확정
400년 동안 위패의 위치를 놓고 벌여온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 가문의 다툼이 막을 내렸다.

호계서원 중건 추진위원회는 조만간 복원 사업에 들어가는 안동시 임하면 호계서원의 위패 위치를 맨 가운데 퇴계 이황, 왼쪽에 서애 류성룡(1542~1607), 오른쪽에 학봉 김성일(1538~1593)로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이 문제를 두고 위패 논란을 벌여온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의 두 문중은 최근 모여 이렇게 합의했다고 추진위는 밝혔다.

호계서원은 1573년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려 안동에 세운 것이다. 이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7세기 초 이황의 수제자들인 서애와 학봉을 이 서원에 더해 모시면서 이들의 위패를 어느 쪽에 두느냐를 두고 400여년 동안 두 사람의 가문과 제자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다. 당시 조정의 서열을 보면,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왼쪽이 상석으로 인식됐다.

이른바 ‘병호시비’로 불리는 이 다툼에서 나이가 4살 많은 학봉 쪽은 나이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쪽은 관직으로 정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1차전은 영남학파의 장로 격인 우곡 정경세(1563∼1633)의 의견에 따라 서애를 왼쪽으로 모시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1805년 서울 문묘에 이들을 모시는 문제를 두고 다시 대립했으며, 결국 양쪽은 서애의 위패를 병산서원으로, 학봉의 위패를 임천서원으로 모셔갔다. 그러다 최근 안동지역 유림들이 호계서원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기로 하면서 또다시 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서애는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이순신을 천거하고 선조를 지키는 등 전쟁을 이끈 공을 세웠다. 학봉은 임진왜란 전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전쟁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했다가 전쟁이 터지자 경상우도 초유사로 적과 싸우다가 숨졌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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