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아무개씨 전달된 500만 달러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정상문 전 청와대비서관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해운사 관련 로비 공판을 마치고 난 뒤에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영장실질심사서 “나는 작은 역할 했을 뿐”
소환 일정 늦춰질듯…검, 영장 재청구 검토
소환 일정 늦춰질듯…검, 영장 재청구 검토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구속영장이 10일 새벽 기각되면서, 검찰의 수사 방향에 상당한 장애가 초래됐다. 지난달 중순 박연차 회장의 정·관계 로비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무패 행진’을 기록하던 검찰의 구속 수사에 일단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무엇보다 정 전 비서관을 구속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쪽에 대한 박 회장의 금품 제공 의혹을 본격 수사하려던 검찰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에게 제공됐다는 100만달러를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건넸다는 500만달러 투자에도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연씨가 정 전 비서관의 소개로 박 회장 쪽을 접촉해 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는 것이다.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쪽의 금품 수수 과정의 중간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박 회장의 진술에다 그의 진술이 종합돼야 노 전 대통령 부부 소환 준비가 단단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 전 비서관은 9일 영장실질심사에서 3억원 수수 혐의를 부인하면서 “상품권 1억원어치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연차 회장한테서 받아 권양숙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100만달러와 관련해서도 “나는 작은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비서관이 수사팀한테 중요한 이유는 그가 4년여 동안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서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퇴임 뒤에도 노 전 대통령의 재정적 설계를 조율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이런 이유로 검찰 안팎에서는 “정 전 비서관과 노 전 대통령의 관계에 비춰 돈거래 당시 정 전 비서관이 이를 보고했고, 노 전 대통령도 돈거래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의 검찰 진술이 곧바로 노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 내부에서는, 정 전 비서관이 체포된 당일 노 전 대통령이 “저희 집에서 요구한 것”이라며 정 전 비서관을 보호하고 나선 것도 결국은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이 지닌 ‘폭발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과문에 ‘부인 권씨가 돈을 받았고, 재임 중에는 몰랐다’는 내용을 덧붙인 것도 결국 체포된 정 전 비서관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이 검찰이 원하는 만큼의 진술을 하지 않으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영장마저 기각됨으로써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을 압박할 강력한 카드를 놓친 셈이 됐다. 검찰은 영장을 다시 청구해 신병을 확보하는 방안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검찰 관계자는 “정 전 비서관이 진술에 협조적이지 않더라도, 건너간 돈과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는 다른 진술이나 증거가 있으니 수사팀이 자신감을 보이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해, 정 전 비서관의 ‘협조’가 노 전 대통령 조사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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