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법 “고의적 사망·상해로 볼 수 없어” 판결
음주운전을 하다 숨지거나 다치면 보험금의 20%만 주도록 하는 손해보험 약관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재판장 박경호)는 그린손해보험이 음주 교통사고로 숨진 허아무개씨 유족들의 보험금 지급 요구를 거부하며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허씨는 2003년 그린손해보험과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숨지면 보험금의 20%만 지급한다’는 약관 등에 동의하고 보험계약을 맺어 달마다 10만원의 보험료를 냈다. 허씨는 지난해 10월 혈중 알코올 농도 0.382% 상태로 차를 몰다 사고로 숨졌고, 보험사는 약관을 근거로 전체 보험금 6000만원의 20%인 1200만원을 주고 나머지 보험금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상법은 당사자의 고의로 인한 사고가 아닌 이상,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사고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음주운전이 고의적인 범죄행위이긴 하지만 음주운전 자체에 대한 고의일뿐, 사망이나 상해의 고의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허씨는 자신의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해 사망했으므로 ‘20% 제한 약관’은 무효”라며 “유족들에게 보험금 6000만원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손해보험사들은 음주·무면허 운전을 하다 숨진 경우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는 약관으로 상품을 팔아 오다 1998년 대법원이 이 면책 약관이 상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한 이후 ‘20% 제한’으로 고쳐 팔아 왔다. 2005년부터는 음주 사망사고라도 보험금이 전액 지급되도록 약관을 고쳐 상품을 팔고 있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음주운전 처벌 강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등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최근의 추세와 상반되는 판결”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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