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고생 많았지…”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맨 오른쪽)가 20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 가족들한테서 두부를 건네받은 뒤 아버지의 위로를 받고 있다. 인터넷에 정부정책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게재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박씨는 이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의왕/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미네르바 무죄’ 의미와 파장
“과장된 서술 있어도 공익 해할 목적 없다”
변호인 “허위사실 유포 처벌법률 폐기돼야”
“과장된 서술 있어도 공익 해할 목적 없다”
변호인 “허위사실 유포 처벌법률 폐기돼야”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에게 법원이 20일 무죄를 선고한 것은 공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촛불집회를 겪고 난 정부는 수사기관을 앞세워 여론 잡도리에 나섰고, 미네르바의 구속은 그런 소동의 정점을 이룬 상징적 사건이었다.
검찰은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과 반비례해 이름을 떨친 사이버 논객을 전격 구속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촉발시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유언비어’ 때문에 격화됐다는 인식이 박씨를 ‘시범 케이스’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언비어 유포를 처벌하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가 되살아났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중앙지검의 마약·조직범죄수사부가 수사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었다. 당시 법원이 “외환시장 및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이라며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에도 법조계에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재판에서는 박씨가 글에서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와 함께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박씨가 지난해 12월29일 인터넷에 올린 글과 관련해, 기획재정부가 달러 매수 자제를 요청하는 긴급공문을 보낸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박씨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박씨가 밝힌 내용이 사실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변호인단은 또 검찰이 5공화국 때 만들어졌으나 거의 적용되지 않던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을 꺼내든 것은 박씨의 기소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했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재판 기간 중,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판사들에게 촛불집회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전기통신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하라고 주문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재판부는 결국 ‘허위의 사실’임과 ‘공익을 해할 목적’이 두루 입증돼야 인터넷 글 작성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의 지난해 7월30일, 12월29일 글에는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대목이 있지만 당시 외환시장 동향이나 정부 정책의 기조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씨 구속 당시 기획재정부 관계자조차도 “외환예산 환전업무 중단은 허위 사실이 아닌데 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이 사건을 둘러싼 문제제기는 끊이지 않았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전기통신법 조항의 위헌성을 재판부가 인식했기 때문에 법률을 더 엄격하게 해석해 무죄가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이 법이 남용되지 않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씨의 변호를 맡았던 김갑배 변호사는 “한국과 함께 허위 사실 유포를 처벌하던 짐바브웨도 그런 법 조항에 대해 위헌 선언을 했다”며 “이번 판결이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인권 수준을 갖추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김지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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