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용산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2일 참사가 빚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지금도…” 방청석 눈물바다

[%%TAGSTORY1%%]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세입자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그때, 법과 정의는 어느 곳에 있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공권력에 면죄부를 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의 책임을 전적으로 떠안은 철거민 8명에 대한 첫 공판이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 심리로 열렸다. 이날 법정은 법률적 쟁점을 다투기 전에, 철거민들이 왜 옥상 망루로 올라갔는지를 호소하는 유가족의 글이 소개되면서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첫 모두진술에 나선 황희석 변호사는 용산4구역 농성 현장에 지원을 갔다가 숨진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윤용헌씨의 아들(19)이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을 낭독했다. 윤씨의 아들은 농성장으로 떠나며 “5일 정도 못 올지 모르니까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썼다. 그는 10년 넘게 식당일에 매달리던 아버지가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오늘 용역이 쳐들어왔어. 너 또래 애한테 얼굴을 얻어맞았어”라며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기도 했다. 아들은 이어 “내가 죽어 지옥으로 간다는 조건이 붙는다 해도, 내 삶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조건이 붙는다 해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며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양복도 맞춰 드리고 함께 낚시도 가고 싶다”고 간절한 그리움을 전했다. 황 변호사는 ‘사부곡’을 읽어 내려가다 감정이 복받친 듯 몇 차례나 숨을 몰아쉬었다. 황 변호사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라는 아들의 말로 낭독을 마치자, 유가족 등 100여명의 방청객 사이에서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던 법정에 탄식 소리도 잇따랐다. 지난 1월20일 경찰특공대의 진압 때 역시 아버지를 잃은 ‘용산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구속 피고인 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렸다. 검찰은 철거민들이 불법으로 건물에 침입해 화염병이나 시너를 투척했고, 이 과정에 경찰관이 숨지거나 다쳤다며 공소사실을 밝혔지만, 변호인단은 사진자료 등을 토대로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변호인단 간사인 권영국 변호사는 “엄청난 인화물질이 들어 있는 망루에 퇴로조차 확보하지 않고 점거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이 위험천만한 작전을 정당한 공무로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법원의 열람·등사 결정에도 공개하지 않은 수사기록 3천여 쪽에 대한 변호인단의 압수 신청을 기각했다. 변호인단은 법원 결정에 따라 검찰에 수사기록을 요청했지만, 1만여 쪽의 수사기록 가운데 3천여 쪽이 공개되지 않자 압수 신청을 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은 서울 용산 철도웨딩홀에서 ‘용산참사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시국회의’를 열고, 4월 마지막 주를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주간’으로 정했다. 행사 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유족 등 40여명은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5월2일까지 밤샘농성을 벌이려고 천막을 설치하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48)씨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노현웅 김민경 기자 goloke@hani.co.kr /영상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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