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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제철거에 아이들 가슴도 무너졌다

등록 2009-05-06 13:32

서울 용산동5가 철거민 이영희씨가 지난해 천막살이를 하면서 ‘철거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아들 동수(11·가명) 형제가 천막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위). 아이들이 철거투쟁을 겪으면서 얻은 ‘마음의 병’은 아이들이 만든 미술작품에 표출된다. 동수는 종이 위에 지점토로 사람 모양을 만들었으나 목과 몸이 분리돼 있고(왼쪽), 골판지로 만든 모형 집은 투명테이프로 둘둘 감아뒀다.
서울 용산동5가 철거민 이영희씨가 지난해 천막살이를 하면서 ‘철거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아들 동수(11·가명) 형제가 천막 옆에서 책을 읽고 있다(위). 아이들이 철거투쟁을 겪으면서 얻은 ‘마음의 병’은 아이들이 만든 미술작품에 표출된다. 동수는 종이 위에 지점토로 사람 모양을 만들었으나 목과 몸이 분리돼 있고(왼쪽), 골판지로 만든 모형 집은 투명테이프로 둘둘 감아뒀다.
‘불안감 표출’ 심리치료 받는 용산 철거지 형제
용역 욕설에 토하기도…사람 많으면 두려움
“왜 때려, 때리지 마.” 빨간색 축구유니폼 상의를 맞춰 입은 남자아이 둘이 티격태격한다. 영락없는 연년생 형제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만들었다는 집이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형 동수(11·가명)가 골판지로 만든 모형 집은 투명테이프로 친친 감겨 있었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동수는 “집이 무너질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색종이로 접은 딱정벌레에도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서울 용산동5가에서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영희(42)씨의 두 아들 동수·동식(10·가명) 형제는 3주 전부터 매주 한 차례 미술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동수가 만든, 테이프가 감긴 집은 “뭔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것”이라는 게 미술치료 교사 김아무개(25)씨의 진단이다.

어머니 이씨와 아이들의 투쟁은 2003년 여름 용산동5가 19번지 일대 도로 옆 작은 공원에서 시작됐다. 5년 동안 200여 세대가 하나 둘 쫓겨나갔지만 이씨 가족은 끝까지 남아 지난 3월 말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5년 동안 아이들은 철거현장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동생 동식이가 5살 때인가, 철거 용역회사 직원이 아이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서 우리와 몸싸움을 한 적이 있어요. 한번은 구청 공무원의 폭언에 형 동수가 놀라서 토한 적도 있고요.” 천막살이를 할 때는 전기가 끊겨 아이들이 손전등 빛에 책을 읽고, 봉고차에서 새우잠을 청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 사이 아이들은 엄마 모르게 새 욕설을 배웠고, 용역직원과 마주치면 “커서 보자”며 악을 쓰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 이씨는 철거싸움에 경황이 없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이라 잠시 거칠어졌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이씨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돼 70여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이들이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답답했다고 한다.

몇 달 뒤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이씨는 곧장 아이들 미술치료를 시작했다. 아이들 마음속의 그림자는 그림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말수가 적은 동생 동식이는 아직도 선생님과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 형 동수는 수염이 많은 60~70대 노인을 그린 뒤 “할아버지가 곧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새 초등학교로 전학해 적응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낯선 어른들을 만나는 것만은 유독 꺼린다.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미술치료 교사 김씨는 설명했다.

다른 철거 현장에서도 이들 형제와 비슷하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고, 어머니 이씨는 전했다. 수원 권선구 철거현장의 한 아이는 죽음과 늙어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주변사람들에게 자주 던진다. 서울 흑석동의 한 아이는 용역회사 직원으로 연상되는 어른이 싸우고 있는 그림을 자주 그린다고 한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하은혜 교수(아동심리학)는 “아이들이 가족들과 연관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면 심리적 외상을 겪을 수 있다”며 “사람들이 많이 걸어오는 모습이나 철거 현장에서 본 망치 같은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또 “남의 도움 받을 여건이 안 되니 홀로 자신을 지키려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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