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진 검찰총장(왼쪽 두번째)이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간부들과 함께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인규 중앙수사부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압수서류 돌려줘…‘현정권 인사’ 수사 난항
“박연차, 천 회장을 구명줄로 여겨 입다물어”
박-천 ‘청탁자금’ 성격·규모 파악에 집중
“박연차, 천 회장을 구명줄로 여겨 입다물어”
박-천 ‘청탁자금’ 성격·규모 파악에 집중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박연차 로비’ 수사가 일시적인 난기류를 만난 듯하다.
획기적 단서를 기대하며 국세청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이틀 만인 8일 수거해 온 서류 대부분을 돌려줬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태광실업 세무조사 착수 단계부터 마지막 검찰 고발 단계까지 보고됐던 서류들을 살펴봤으나 (외압이나 로비에 의해) 세무조사 결과가 왜곡되거나 축소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자료 반환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원시 세무조사 자료와 고발자료를 비교해 고의 누락 또는 은폐된 내용을 찾아내고, 거기서 수사의 실마리를 풀려던 계획이 일정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검찰은 그 대신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본인과 가족, 회사를 이 잡듯 뒤지는 등 ‘우회로’를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거치며 ‘정치적 부담’이 늘어난 만큼 검찰은 편중수사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권을 향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구명로비를 파헤쳐야 할 처지다. 더욱이 ‘재기’를 노리는 박 전 회장이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청탁 사실에 입을 다물고 있어 수사가 순탄하지 않다. 수사팀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천 회장을 여전히 자신의 구명줄로 여기기 때문인지 협조를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수사팀은 박 전 회장과 천 회장 사이에 이뤄진 수십억원대의 돈거래 가운데 청탁 대가로 보이는 ‘수상한 흐름’을 골라내, 이 돈의 성격과 규모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박 전 회장의 사돈이며 국세청 고위 간부를 지낸 김정복 전 보훈처장을 출국금지하고, 그의 계좌도 추적 중이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미국 체류중)도 곧 불러들일 태세다. 요컨대 다각도 수사가 진행중인 셈이다.
검찰은 특히 천 회장 수사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천 회장과 그 가족들의 탈세 혐의도 이미 수사 대상에 올렸다. 검찰은 천 회장과 그의 자녀들이 2007년 11월 세중나모여행 주식 135만주를 171억원에 파는 과정에서 세금을 포탈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또 천 회장의 아들이 2007년에 판 회사 주식을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사들이는 과정에서 증여세를 포탈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천 회장을 부르기에 앞서 그의 입을 열 ‘열쇠’를 찾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또 천 회장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움직인 300억원대의 자금 거래에도 확대경을 들이대고 있다. 천 회장과 자금을 주고받은 인사들을 대거 소환조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낸 특별당비를 (천 회장이) 대납했다는 ‘30억원 의혹’ 등을 살피다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덮고 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대선자금이라도 마찬가지”라며 수사 의지를 분명히 했다.
수사 과정에서 박 전 회장 외에 천 회장에게 돈을 건넨 또다른 인물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도 “우리는 천 회장이 매우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천 회장이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 본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 금전적 도움을 줬지만, 그 돈이 전부 자기 돈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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