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경우는
검찰이 법원의 공개 결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용산 참사’ 수사기록의 일부를 공개하지 않음에 따라 관련 판례와 외국 사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은폐한 사건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1996년 10월 ㄱ씨는 같은 해 8월부터 3개월 동안 네 번에 걸쳐 여성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 속옷에 묻은 정액이 ㄱ씨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검찰에 보냈지만, 검찰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ㄱ씨는 1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국과수 감정 결과가 공개된 뒤 무죄 석방됐다. 대법원은 2002년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판결문에서 “검사는 범죄 수사를 통한 사회방어뿐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의무도 함께 지닌다”며, 국가가 원고 등에게 4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국에선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하면, 피고인에 대한 공소를 기각하기도 한다. 지난달 7일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의 에멋 설리번 판사는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을 기소한 검사 6명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기고 이를 개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공소를 기각했다. 설리번 판사는 한 걸음 나아가 “검사들을 수사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영미법의 공판중심주의를 따르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했지만 검사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할 장치가 없다”고 지적한다. 증거개시제도란 검찰이 재판에 앞서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개시제도의 취지는 피고인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검찰이 수사 결과를 모두 공개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면 재판 자체가 불공정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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