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
[뉴스분석]
후배 판사 집단 불신…신 대법관 점점 고립
사퇴촉구 수위 따라 ‘신의 운명’ 달라질듯
후배 판사 집단 불신…신 대법관 점점 고립
사퇴촉구 수위 따라 ‘신의 운명’ 달라질듯
판사들이 ‘루비콘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경력 10년 안팎의 단독판사들이 앞줄에 섰다. 사법파동 때마다 개혁 움직임을 이끈 것은 이들 연조의 법관들이었다. 판사의 재판 독립, 나아가 사법부의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한 신영철 대법관이 물러나지 않으면 그냥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신 대법관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를 통해 사실상 ‘탄핵’을 당했다. 불과 석 달 전 자신이 법원장을 지낸 최대 규모 법원에서 후배 판사들로부터 “대법관으로서의 업무 수행이 부적절하다”고 심판을 받았다. 촛불사건 피고인의 보석 허가를 자제하라거나, 위헌심판 제청에도 불구하고 촛불사건 재판을 속행하라고 끈질기게 종용한 데 대해 참석자 90여명은 만장일치로 “법관의 재판권에 대한 간섭”이라고 규정했다.
판사들의 문제제기는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15일 열린 서울동부지법과 서울북부지법 단독판사회의도 “신 대법관이 더이상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18일에는 서울서부·부산·울산·의정부·인천지법에서도 단독판사회의가 열린다. 서울가정법원에서는 회의 개최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고등법원에서까지 회의 소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상식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촛불사건 당사자들은 물론, 후배 법관들한테서도 집단적 불신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김동현 대전지법 판사는 “이제 ‘재판의 독립이 보장되어 있다’고 국민들에게 말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일선 판사들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신 대법관에게는 파문의 최초 공론화, 노골적 재판개입 내용을 담은 전자우편 공개, 진상조사단의 결과 발표와 공직자윤리위원회 회부 등 몇 차례의 계기에서 용퇴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이용훈 대법원장한테서 ‘엄중 경고’를 받은 뒤 내놓은 사과문에서 신 대법관은 “최선의 사법행정을 한다”는 생각에서 재판 개입을 했다고 밝혔다. ‘자리’에 대한 그의 집착은 상궤를 벗어나 있다.
신 대법관은 지금의 자리에 유독 강한 열망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판사 임용 뒤 28년간 그려온 꿈이 실현됐는데 스스로 내려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고립무원이 돼가는 신 대법관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집권 정치세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촛불사건의 ‘엄정 처리’는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이해가 일치되는 지점이다.
신 대법관이 계속 버틴다고 가정하면, 남는 것은 후배 판사들의 대응 수위다. 판사들은 아직 직접적으로 ‘물러나라’고는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 상황’이다.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파괴했다고 비난받는 신 대법관이 헌법상 법관의 신분 보장에 대한 판사들의 결벽증적 태도에 기대어 연명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판사들이 모든 ‘카드’를 꺼내 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 회람과 전국판사회의 등이 남아 있다. 항의성 집단사표라는 극단적 방식까지 거론된다.
분명한 것은 ‘식물 대법관’에 비유되는 신 대법관이 자리에 연연할수록 자신과 사법부가 입을 상처는 더 크고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분명한 것은 ‘식물 대법관’에 비유되는 신 대법관이 자리에 연연할수록 자신과 사법부가 입을 상처는 더 크고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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