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 ‘이메일 진술’
수사팀 관계자는 “한 전 청장한테서 수사상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부탁을 받은 천 회장이 한 전 청장 등 세무조사 지휘라인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태광실업을 잘 봐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청탁이 먹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가 세 갈래 이상으로 나뉘어 진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밑바닥’에선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직원들이 세무조사팀 실무자들과 접촉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 등 세무조사팀의 주요 간부들은 박 전 회장의 사돈이자 중부지방국세청장 출신인 김정복씨가 맡았다고 한다. 세무조사 지시·보고의 최종 책임자인 한 전 청장은 천 회장이 직접 전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밝혔다.
천 회장과 한 전 청장은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동문으로 엮이는 등 평소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사팀은 “세무조사 쪽은 전문가인 김 전 청장이 맡았다. 천 회장은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의심하는 ‘다른 역할’이란, 여권 핵심과 박 전 회장 사이에서 다리의 구실을 뜻한다.
천 회장은 한 전 청장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전 청장이 로비를 받아주지 않아 설득이 필요했거나 ‘당근’을 제시하기 위해 통화 횟수가 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수사팀은 한 전 청장에게 ‘천 회장과 통화를 한 배경에 국세청장직 유임 목적도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한 전 청장은 이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은 국세청장 인사와 개각설이 나돌던 지난해 12월, 경주와 대구에서 이명박 대통령 및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측근들과 골프를 치고 회식을 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유임 운동’을 했다는 방증이다.
한 전 청장이 검찰 수사에 ‘돌파구’를 열어줄, 의미 있는 답변을 했다면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라도 소환 조사 필요성은 더 커진다. 하지만 검찰은 “참고인 신분이라 달리 방법이 없다”며 한 전 청장 소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금 추적과 같이 수사의 단서를 찾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검찰 스스로 밝혔다.
‘로비를 거절했다’는 한 전 청장의 답변은, 이번 사건을 일찌감치 ‘실패한 로비’로 규정한 검찰의 입장과도 맞아떨어진다. 윗선으로 가지를 뻗지 못한 채 천 회장 선에서 수사가 멈춰 설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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